'권하고 싶은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2

  1. 2009.09.10 "정운찬 행보" 주시에 앞서, "MB정책"에 주목하라! (2)
  2. 2009.09.07 노엄 촘스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하다
  3. 2009.07.09 일하는 사람들이 꼭 배워야 할 건강법!!
  4. 2009.05.07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
  5. 2009.05.07 진보세력 집권때, 국정 프로그램 있나?
  6. 2009.05.07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7. 2009.04.28 대한민국은 공동의 가치가 없는 사회
  8. 2009.04.27 새로운 공화국은 필요한가?
  9. 2009.04.22 시로 풀어쓰는 "우리 사는 이야기" (2)
  10. 2009.04.22 시로 풀어쓰는 "우리 사는 이야기" (1)
  11. 2009.04.22 시와 노래와 이야기가 있는 "진보"
  12. 2009.04.22 승자는 적에게서 배운다.

"정운찬 행보" 주시에 앞서, "MB정책"에 주목하라!

"정운찬 총리 카드"에 야권은 물론, 진보진영도 혼란스러워 하고, 놀라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조금 더 성숙한 자들은 "반MB의 구호 속에 대안이 빠져있음"을 반성하고, "MB의 정치적 위기를 지나치게 낙관했음"과 "당위적이고 무조건적 반대투쟁이 국민적 지지로 연결되지 않음"을 통렬하게 깨우치고 있다.

분명한 건, 진보.개혁진영은 "반MB" 하나만으로는 10월 재보선도, 2010지방선거도 치를 수 없다는 것이고, "반MB" 하나만으로 국민들이 하나로 집결하지도, 지지가 모아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운찬 총리 카드"는 굉장히 큰 무게를 갖고 있다.
"정운찬의 변절" 운운하며 개인을 지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정운찬 총리 카드"가 갖고 있는 정치적 내막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즉, MB의 1년반을 제대로 진단하고, 향후 MB정책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민심을 주관적이거나 낙관적이 아닌 냉철하고 과학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아래의 글은 그런 점에서 곱씹어야 할 내용이다. MB의 중도실용과 친서민 정책, 무조건 욕하기 전에 그 배경을 고민해보자~~
아래의 글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홈페이지(www.saesayon.org)에서 퍼왔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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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정운찬의 변심인가, MB정책의 변화인가?
이명박 정부 ‘중도실용-친서민’ 행보의 경제적 배경

                                                                                                                    2009-09-08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정운찬 총리지명, 무엇이 혼란스럽게 하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인사개편에 이어 단행한 개각인사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지명하자 그 파장이 적지 않다. 한때 그를 대통령 후보 물망에까지 올렸던 민주당의 혼선이 역력하고, 이명박 정부를 1987년 이전의 독재정부로 회귀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퇴진운동까지 밀어붙였던 진보 쪽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듯 싶다.

어찌된 것인가. 원래 민주개혁세력(?)에 가까웠던 정운찬 교수의 변심인가, 아니면 이명박 정부가 정책기조를 바꾸기 시작한 것인가. 아니면 둘 다이거나 둘 다가 아닌데 우리 국민이 두 주인공에 대해 착각하는 지점이 있었던 것인가.

혹자는 정운찬 내정자에게 “절대 속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하고 또 다른 혹자는 “원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잘라버리기도 한다. 혼란의 핵심이 정운찬의 변심이라면 늦었지만 해당 인물에 대한 시각교정을 하면 그 뿐이다. 우리 국민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 보수적이지만 케인주의 경제학자로 알려진 정운찬 내정자가 기존 신자유주의 정책에 일부 궤도수정을 할 것이라는 일부 기대도 있지만, 현재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 여전히 경제 구조적 위기 반경 안에 있는 현재의 여건은 개인의 재량 폭을 늘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지극히 협소하게 만들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국민의 39.2퍼센트만이 정 내정자가 ‘자기 목소리를 낼 것 같다’고 응답한 데서 국민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던 정책결정자들도 이미 ‘작은 정부, 큰 시장’ 논리를 잠시 유보하고 국가를 끌어들여 경제위기를 탈출하려고 분주한 상황에서 정 내정자의 ‘목소리’가 실린다고 해도 큰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MB정책의 변화라고 판단한다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정도의 변화인가. 야당이 주장했던 ‘국정기조의 전환’ 수준인가, 아니면 ‘립 서비스’ 수준인가. 정책이 변했다면 그 이유와 배경은 무엇인가 하는 이슈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의 보폭이 이전보다 넓어진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정작 필요한 것은 정 내정자에 대한 ‘인물탐구’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정책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경제적 지형의 변화, 특히 경제위기의 향배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에 대해 냉철하게 점검해 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눈으로 본 집권기간

그렇다면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표현처럼 ‘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라는 3대 위기 속에서 정권유지가 불가능할 정도의 20~30퍼센트 지지율까지 추락하며, 기반이 심각하게 흔들려 공권력에 의존하는 길 외에 다른 수가 없을 것 같던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극적인(?) 국면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인가.

간단히 이명박 정부의 입장에서 지난 집권기간 1년 반을 돌아보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자칭 ‘잃어버린 10년’ 동안 사회 곳곳에서 보수의 기반이 와해되었다고 판단하고 ‘권력기반을 보수적으로 재구축’하는 작업을 다방면에 걸쳐 나름대로 전개했다. 이는 핵심 권력기반뿐 아니라 노사관계, 언론, 교육, 남북관계 분야를 망라하고 있었으며 하다못해 NGO 영역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권력의 성격이 일정하게 교체되는 상황에서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에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7월 미디어법 강행처리로 1단계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동시에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들이 전통적인 자기 지지기반을 소홀히 한 것과 달리, ‘강부자 내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통적 부유층과 기업 기반을 안정화시키는 작업에 우선순위를 둔다. 보수적 권력기반 재구축과 전통적 지지기반 안정화를 담보한 후에 일부 서민층 끌어안기 시도를 본격화하려던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뜻하지 않는 두 가지 사건에 직면해야 했다.

하나는 집권하자마자 밀어닥친 시민들의 ‘촛불항쟁’이었다. 촛불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학습 교훈은 ‘강공’이었고, 그 결과 1258명 기소라는 엄청난 공권력을 동원했고 급기야 미네르바 구속을 강행하며 공권력 의존도를 높여가게 된다.

또 하나는 촛불시위의 고비를 넘기자마자 본격화된 ‘경제위기’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심각한 경제위기 폭풍은 서민층을 일부라도 끌어안기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기초를 잃어버리게 되었음은 물론, 전통적 부유층 지지기반 마저 상실시키고 국정 수행능력을 의심받을 수 있는 위기였다. ‘경제위기’를 넘어 ‘정권위기’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747 공약’, ‘주가 3000’ 등의 공약들을 도저히 입에 담지도 못할 상황이 된 것이다. 오직 공권력에 의존하는 길 밖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런 판국에 남북관계를 더욱 보수적으로 밀어붙여야 그나마 이념적으로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묶어둘 수 있었다. 민주주의 위기와 서민경제 위기, 그리고 남북관계 위기는 그렇게 이명박 정부 앞에 닥친 것이다.

경기 회복 조짐을 위기 탈출의 기회로 삼으려는 이명박 정부

그런데 위기가 극점에 달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연이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바로 그 시점에서, 외형적인 경제지표들이 급격히 개선되면서 경기회복을 지렛대로 한 국면 탈출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 속 내용이야 어떻든 경기회복이 OECD 국가 가운데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주식 가격도 OECD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수준의 상승률을 보이는 가운데, 삼성, 현대와 같은 초 대기업들이 국제무대에서 선방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날아드는 국면이 전개된다. 이명박 정부가 일부 전통 보수 이데올로기 세력의 반대를 무시하고 공개적으로 ‘중도실용, 친서민’ 행보를 내걸며 여유를 찾기 시작한 지난 6월 시점이었다. 

          [그림1] 각국 분기별 실질GDP성장률        [그림2] 주요 OECD 국가 주가 상승률
                                                                     (2008.8 말~2009.8 말) 




“정치위기와 남북관계의 위기가 급격히 위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올해 들어 한국경제가 경기부양책과 환율여건 개선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보다 경기추락 속도가 완화되고, 심지어 조기 경기회복의 가능성까지 높아지면서 이명박 정부는 이를 지렛대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고 새사연이 주장한 시점도 그 무렵이다. (새사연, “힘의 논리로 국민을 이긴 정부는 없다”, 2009.6.22)

이명박 정부는 곧이어 민감한 국민적 의제들인 ‘사교육대책과 심야 학원교습 금지’, ‘취업 후 등록금 대출 상환제’에 이어, 실속은 없지만 ‘서민 감세와 고소득층/대(大)법인 세금감면 축소’를 발표하며 민심 수습책을 이어나갔고 종국에는 정운찬 총리를 지명하기까지 했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경제위기 와중에 위기 탈출을 명분으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 토목 건설업자들을 만족시켰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명목으로 부동산 규제완화를 통해 강남 부유층의 자산 가치 실현의 기회를 주고 현존 가치도 지탱해주었다. 미디어법 강행으로 보수언론자본의 요구도 채워주고, 주가 반등으로 일부 금융 투자자들의 손실도 보존해 준다. 이런 상황에서 ‘떡고물 수준’의 서민 정책이 큰 무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경기가 회복된다는 배경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리라 추정된다.

문제는 민주당이나 일부 진보가 오직 “노대통령 서거 → 미디어법 강행 → 김대통령 서거”로 이어지는 정치적 이슈에만 매달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 이탈과 정치적 위기 확대를 과대평가했다는 것이다. 즉, 지난 약 3개월 동안 민주당과 진보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위기 가속화’라는 측면에 집중했던 반면, 이명박 정부는 ’경제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정치, 사회적 국면 반전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운찬 카드’는 바로 경제회복을 지렛대로 한 국면 반전의 연장선이었는데, 야당과 일부 진보는 정치위기 가속화라는 틀 안에 갇혀 ‘오버’하고 있다가 그 틀로 해석되지 않는 정운찬 총리 지명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정운찬 총리 지명으로 인한 야권 혼란의 배경이 아닐까.

위기탈출을 하기에는 현재의 경기회복 통로가 너무 좁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대목은 ‘경기회복에 대한 이후 전망’이자 외형적 경기회복을 넘는 ‘국민생활의 사실상 회복’ 여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이것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은 문자 그대로 일시적인 ‘정치적 제스쳐’로 단명할 것이고 정운찬 내각의 수명도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경제구조의 양 끝단에 있는 당사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정책에 대해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국정 지지율과 선거 등을 고려한 보수정권의 외연 넓히기 성격으로 본다”는 의견을 보였다(<한겨레신문> 2009.9.7). 또한 “민심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행보이지, 친시장적 기조가 흔들리는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는 발언은 비록 주관적 기대가 섞였지만 냉정한 현실 인식일 수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정책에 대해 기존 정책에 ’변화가 있다’는 국민의 응답은 26.0퍼센트에 그친 반면, ’별 변화가 없다’는 응답이 61.4퍼센트로 나온 최근의 여론조사 역시 국민들의 생각이 기업인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의 2009년 9월 7일자 여론조사 결과)

지금 한국사회는 바야흐로 거품의 시대다. 우선 이명박 정부 국면 전환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경제회복 지표들 속에 상당한 거품이 존재한다.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책과 일부 초 대기업의 약진, 그리고 외국 금융자본의 주식 시장 유입이라고 하는 경기회복 견인차들 속에 모두 거품이 내재하고 있다.

정부도 정치적 국면전환을 위한 경제적 지탱점이 얼마나 허약한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2분기 경기지표의 약발을 유지시키기 위해 4분기 예산 가운데 10~12조 원을 3분기에 앞당겨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9월 말부터 총 3조 6000억 원을 쏟아 부어 4대강 사업 발주를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1000억 원 이상을 투입하는 12개 공구 중 9개가 낙동강 공구였다. <국토해양부 발표>) 이미 140조 원 이상의 금융부채를 안고 있는 공기업들을 독려해 추가 투자를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4대강 사업으로 복지 예산이 축소되고 있다는 비난이 일자 수자원공사를 끌어들여 4대강 사업 비용분담(내년 투입비용 6조 7천억원 가운데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3조 2천억 원을 수자원공사 부담)을 시도하고 있다. 고용악화 회복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자 올해 연말까지로 되어 있는 희망근로를 연장(2009년 25만명을 내년에 10만명으로 줄여서 지속)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보면 경기회복이라는 탄력지점을 유지시키기 위해 정부가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같은 ‘끌어당기기’식의 경기회복 정책이 이어질 수 있을까. 정부는 민간투자가 조만간 활성화되고 세계경제가 회복되어 수출물량이 다시 늘어날 때까지 버틸 생각이지만 세계 경제여건을 돌아볼 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리한 경기회복의 거품이 꺼지면 ‘중도실용, 친서민’ 이미지의 거품도 꺼질 것이며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와 정운찬 총리 내정자 안에 내재된 거품도 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게 되어 있다. 민주당과 일부 진보가 우리 사회상황을 부분적으로만 보고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주관적 틀에 갇혀 정운찬 총리 지명에 당황하는 모습을 반복하는 한 이명박 정부의 거품이 사라진다고 해서 민심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2개월을 순전히 정치세력간의 대결이라고 놓고 보면 야당과 진보에게 아쉬운 대목이 있다. 기업형 수퍼 입점 규제를 치고 나온 상인들의 움직임은 ‘중도실용, 친 서민’ 행보의 약점을 가장 적절히 활용한 사례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실패작인 비정규직 기간연장 실패 역시 고용정책에 대한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야당과 진보는 이에 대한 충분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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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현주 2009.09.10 13:0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정운찬이 그닥 맘에는 안들지만 4대강 하나라도 제대로 대통령과 국민의 뜻에 따라 추진해주길 바랍니다

  2. 황순규 2009.09.10 14:0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시사인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정국 주도 자신감이 정운찬 지명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언급하더군요.
    언뜻, 이게 뭔 카드야? 라고만 치부할 뻔 했는데. 시사인도 그렇고 세사연도 그렇고 잘 짚어주는 것 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노엄 촘스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하다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가 "대한민국과 오바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시사in의 노력으로 성사된 인터뷰가 그걸 가능케 했다.

노엄 촘스키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노엄 촘스키가 말하는 "오바마와 미국"....

꽤, 흥미로운 주제다.

노엄 촘스키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한국민이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렸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후퇴할 가능성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투쟁의 과정이며,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선행조건이라고 강조한다.

버락 오바마에 대해서 그는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를 "수많은 권력자와 자본가가 앞세운 얼굴마담" 정도로 비유하고 있다.
당연히 그는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은 실패할 것을 확신하고 있고, 아프간 전쟁은 오바마 정부의 끔찍한 범죄라며 경고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민중임을 분명히 했다. 국민이 직접 나설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으며, 한국은 민주주의 알맹이를 채우기 위해 더 많은 국민들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MB의 신독재를 겪고 있는 한국민에게 그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노엄 촘스키는 전하고 싶은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시시in에서 퍼온 내용임을 밝힌다.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내용이다.... 촘스키 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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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in 김영미 편집위원


노엄 촘스키 교수(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언어학과)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학자이자 진보적 정치 활동가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이다. 그는 주로 미국의 외교정책과 인권 문제를 비판해왔다.

이런 노엄 촘스키 교수에 대한 인터뷰는 실로 쉽지 않았다. 80세의 노령인 데다 최근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인망식 인맥 동원과 기다림 끝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8월11일 보스턴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다.

컴퓨터도 없고 자필로 쓴 종이들과 책으로 뒤덮인 책상에 앉아서 필자를 맞이한 그는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오시느라 수고 많았다.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한국 국방부가 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한국에서 당신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

누군가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또한 그런 조처에 반대해 내 책을 읽기 위한 모임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한쪽에서는 금지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다른 쪽에서는 일부러 찾아 읽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투쟁의 과정이다. 미국도 1960년대 이후에야 언론의 자유가 제대로 보호받기 시작했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선행조건이다. 그러나 독점자본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인물을 내세우려고 선거를 매수하는 일이 있는 한 그런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형식적으로 민주주의의 형태를 갖췄을 뿐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로 자처하는 나라 중 상당수는 사실 ‘무늬만 민주주의’다. 그러나 권력은 결국 국민의 손에 있다. 과거 한국에서처럼 독재 정권은 국민의 힘에 의해서만 전복된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동안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현실에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있다.



사실은 흔한 일이다. 미국만 해도 그렇다. 예컨데 미국의 노예제도는 그 끔찍한 남북전쟁을 치르고 나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계속 남아 있었던 것이다. 종전 뒤 20년이 지나서도 남부에서는 여전히 흑인을 억압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흑인은 여전히 노예였으며 농장에서 계속 목화를 따고 사슬에 묶여 광산으로 보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그랬다. 물론 지금 미국에서 그런 일은 볼 수 없지만 정의가 실현되기까지는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광복이 되어 근대국가로 탄생한 지 겨우 60년밖에 안 되지 않았나. 미국보다 민주주의가 훨씬 급속하게 실현되고 있는 거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후퇴할 가능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전 세계를 대표하는 민주국가다.

글쎄. 미국의 경우, 아직도 독점자본이 국가를 소유하고 운영한다. 미국의 선거 시스템에서 수백만 달러 규모의 자금이 없다면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 선거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구입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돈을 지불하는 것은 권력자들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권력자들에게 위험한 제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빈민 등 대다수 국민이 투표권으로 독점적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마음을 놓는 순간 권력자들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어떤 정부인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6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발생한 일을 보면, 오바마에 대한 여러 이미지가 상상이나 착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선거는 치약 광고와 비슷하다. 아름다운 소녀가 치약과 만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내용의 광고가 있는데, 이 광고를 시청하다보면 믿게 된다. 오바마에게 거는 우리의 기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는 혹시 형식적으로 내세워진 일종의 광고 모델 아니었을까. 광고에 등장하는 연예인 같은 모습으로 민주주의를 선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그의 뒤에는 이익을 바라는 수많은 자본가와 권력자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바마 정부는 현재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의료 시스템의 위기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보건의료 시스템이 개혁되지 않는다면 미국 경제는 파산하고 말 것이다. 현재 5000만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 시스템을 바로세우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미국의 의료비는 다른 나라들보다 두 배나 더 비싸다. 그러나 의료 혜택은 비참한 수준이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 의료 시스템이 민간 자본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정말 비능률적이다. 민간의료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의료 시스템의 중심부에 있는 민간 기관들의 목적이 이윤 창출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우 의료비는 엄청나게 높은 수준으로 책정될 수밖에 없다. 행정·감독·관리비로 수백억 달러가 낭비되고 정작 병자들에게는 보험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또한 약품 가격은 다른 국가보다 매우 비싼 편이다. 국민의 85%는 정부가 민간 제약회사와 협상해서 약값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며칠 전 뉴욕 타임스에, 오바마 대통령이 제약회사와 어떤 종류의 거래를 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그 거래에서 오바마는 민간 제약사가 약값을 멋대로 결정하는 데 걸림돌이 될 어떠한 법적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오바마 정부가 의료보험 개혁에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인가.

미국에서는 보험회사도, 월 스트리트의 투자자들도 의료보험 개혁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당시 대형 금융기관에서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았다. 금융자본은 공화당 후보였던 매케인보다 오바마를 선호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월 스트리트가 의료보험 개혁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라크나 아프간 전쟁에, 부시나 오바마 후원자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 전쟁의 목표는 꽤 명확했다. 이라크를 정복한 뒤 말 잘 듣는 괴뢰 정부를 설립해서, 미국 기업들이 거대 규모의 석유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 지역에 전략 거점을 통제할 수 있는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런 특권을 얻었다. 특히 2007년 11월 당시 부시 대통령은 군대를 이라크에 영원히 주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의 군수업체와 기업이 이라크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이 목표를 위해 부시 전 대통령은 군사기지 주둔을 위한 협약에 서명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 협약을 아프간에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2001년 10월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그 목표는 아주 명확했다. 탈레반 정권의 전복이 아니었다.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엎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2001년 10월 당시 미국의 목적은 9·11 테러 혐의자들을 인계받는 것이었다. 탈레반은 증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부시 정부는 그것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을 넘겨받기 위해 아프간 전쟁을 도발했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다른 금전적 이익을 막대한 규모로 챙겼다. 이것은 심각한 범죄이다. 오바마 정부 역시 아프가니스탄이 전략상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 후원자들의 이익을 위해 다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니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오바마 정부의 끔찍한 범죄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보는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만큼의 비용이 필요할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대부분의 분석가는 미국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성공할지도 모른다. 미군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우리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성공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우리가 추궁해야 하는 것은 ‘너희들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혹시 미국의 실수냐고? 그런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확실하게 못 박을 것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강대국들이 행동하는 방식이다. 강대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장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다. 일본에 침략당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국민을 설득한다. 테러 집단이 미국을 위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르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그 테러리스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테러리즘은 미국 권력자들이 애용하는 도구다. 미국 권력자들은 사실 테러리스트들이 하는 짓 그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자기들의 가족이나 친구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테러라는 사건을 적절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이익을 취한다. 9·11 사태 이후 테러가 더 증가하는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 당시, 정보기관과 개별 분석가들은 테러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정확하게 현실화되었다. 부시 집권 당시, 어떤 단체는 지하드 조직을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설득해서 테러 행위에 종지부를 찍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미국 권력자들은 반대로 행동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그 다음 이라크를 침략했다. 그리고 테러는 증가했다. 미국 분석가들은 이를 ‘이라크 효과’라고 명명했다. 이라크 침공 이후 테러는 7배나 늘었다. 아마 현재 미국인들은 물론 미래의 후손들까지 이 테러와의 전쟁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소수 권력자들의 사익 때문에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는 국민이 아니라 권력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쉽다. 누가 한국을 소유하고 있는가. 한국 역시 평등주의자들의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경제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이 소수는 정부 정책과 언론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이런 소수를 위한 존재일 뿐인지도 모른다. 미국 민주주의는 2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이에 비해 훨씬 짧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잠시 퇴행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과정이다. 현실에서 잘못된 일을 경험하면 할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지지 않던가. 한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뤄냈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를 상기해보라. 미국이나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할 때 정말 드문 경우이다.

당신은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로서 어떻게 하면 정부와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소통이 어렵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원한다면 편지를 보낼 수 있겠지. 그러나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 테이블로 불러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올까. 정말로 소통하는 방법은 조직을 구성하여 그들에게 항의하는 것이다. 당신들의 의사와 다른 정책을 수행하면,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민의 정당한 행동이다. 그래야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이미 많은 희생을 겪었다. 앞으로도 그럴까.

그럴 것이다. 앞으로도 많이 희생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알맹이를 채워나가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당시에도 한국인들이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의 알맹이를 채운 바 있다. 이런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 정부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러나 일단 민주주의를 쟁취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착각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든 아이스크림처럼 너무도 허망하게 없어져버릴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쇠퇴도 중요한 과정이다. 민주주의는 아주 어렵고 비싼 노력 끝에 약간 맛볼 수 있는 어려운 쟁취의 과정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주체는 민중이다. 정부에게 민주주의를 맡기지 말라. 국민이 직접 그 중심으로 나설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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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이 꼭 배워야 할 건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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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의 오종렬 의장님 (현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이시지만, 여전히 나에겐 의장님!!)
그러나, 오 의장님은 여전히 호랑이 같은 카리스마와 따뜻한 미소를 탄탄하고 든든한 모습속에서 보여주신다.
오 의장님의 블로그를 여행중 건강비법을 찾았다.
오 의장님의 건강을 빌며, 모든 이들에게 소중한 건강비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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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에 끌려가 고약한 곳에 갇혀 있다가 바깥 세상에 나온 후에도 집에는  잠시 잠깐씩 손님처럼 들리곤 했다. 그렇게 집 떠나 돌아다니기에 15년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 건강을 돌보기는커녕 해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생활습관이나 기질이 좀 뭐해서 그렇지 내 나름대로 건강과 체력관리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무던히도 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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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관되게 애쓰기 첫 째~

숨(호흡)은 심장 위장 간장....그리고 모든 신경계를 강력하고 원활하게 다스린다.

             

복식호흡 1단계

윗몸(상체)을 바로 세우고 어깨와 가슴 배의 힘을 뺀다(바르고 편한 자세).

아주 천천히 배를 등 쪽으로 당기면서 코 밑에 댄 깃털이 움직이지 않게끔 숨을 내 쉬되 바닥까지 쥐어짜 내보내려고 억지 부리지는 않는다.

숨을 내 쉰 다음 일정한 시간 동안  멈추려 하지 말고 들숨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놔둔다. 들숨을 몸 안에 가득 채우려고 힘주지도 않는다.

조금 익숙해지면 날 숨이 들숨보다 조금 더 길게 한다. 그리고 들숨과 날 숨의 전환 시간은 자연스럽게 놔둔다. 폐활량이나 평소 습관에 따라 사람마다 같지 않으니 숨 쉬는 시간 길이에 구애 받지 말고 힘들지 않게 하되, 시도 때도 없이 자주 한다.  한 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평정심과 생기와 활력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복식호흡 2단계

1단계 복식호흡을 하는 동안,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다음과 같은 <별도의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2단계=1단계+별도의 연습)

▶바닥에 엎드린다.- ▶목 부위에 방석을 접어서 괸다.-▶두 손바닥을 방석에 얹는다._▶하반신은 바닥에 밀착한 채 두 손을 천천히 밀어 상체를 코브라처럼 세우면서 숨을 내 쉰다._ ▶ 이 때 명치를 오목하게 하여 배꼽 아래로 떨군다고 의식한다._▶원 위치로 돌아가면서 들숨은 들어오는 대로 놔둔다.


처음엔 서 너 차례씩 하다가  차차 횟수를 늘린다. 절대로 욕심부리지 않는다. 강조할 점은 명치를 떨구는 데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다. 옛 부터 명치를  오목가슴이라고도 불렀다. 명치는 반드시 오목해야 하고 그 반대로  볼록하면 심장에 비극이 생긴다.

                                                        

복식호흡 3단계

결가부좌(부처님 자세) 또는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1단계 복식호흡을  지속한다. <별도의 연습>은 거르지 않고 별도로 지속한다.

가부좌 틀기 힘들면 쥐 소금 먹듯 조금씩 해도 되고 그도 힘들면 하다 말다 해도 좋다. 하다보면 잘 된다.

복식호흡이야말로 만병통치는 아니더라도 백약을 뛰어넘는다. 내 고질이었던 코 막힘과 과로 불면증 같은 건 단박에 날려버리고, 상처 깊은 목(성대)과 척추만곡과 심장 부정맥과 위궤양도 다 극복했다.



(2)일관되게 애쓰기 둘 째~

 근육은 단련하지 않으면 쉽게 퇴화한다. 반대로 꾸준히 합리적으로 단련하면 비록 나이가 들더라도 어느 정도는 유지 발달한다. 골격의 지탱과 모든 신체 활동은 근육이 맡아한다. 그러므로 나이에 관계없이 근력을 다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력화 노화 퇴행이 급속 진행한다.

▶엎드려 팔 굽혀펴기(세 번에 나눠 12회 18회 24회) -의료전문가의 권고에 따라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바닥에 반듯이 누운채 다리를 죽 뻗어서  30~40cm씩 위 아래로 진동.(세 번에220회)

▶아령 들고 팔 굽히기(세번에 좌우 각 60회) -아령의 무게 대신 한 팔을 굽힐 때 다른 손으로는 저지.

위 세 가지 종목을 한 셋트로 하여 하루씩 건너서 시행한다. 나이와 신체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근력운동은  하루 건너 하루씩은 쉬어줘야 한다. 근 섬유는 쉬는 동안에도 발달한다.


(3)일관되게 애쓰기 셋 째~

▶두 발을 2자 폭 정도로 충분히 벌리고 서서 발끝을 안으로 약간 모은다. 상체를 바로 세운채 기마자세가 될 때 까지  천천히 앉으면서 날 숨, 일어서면서 들숨,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복식호흡을 반복한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반듯이 선다. 천천히 오른 발을 약간 멀리 떼어 발뒷꿈치 부터 땅바닥을 밟으면서 발가락으로 땅을 움켜쥔다. 그리고  물레방아 돌리듯이,톱니바퀴 굴리듯이 지구를 뒤로 돌린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간다. 다음엔 왼 발을 같은 방법으로 바꿔 나간다. 호흡에 맞춰 천천히 할수록 효과가 크다. 쉬워 보여도 아주 힘든데, 운동이라기보다는 축기(築氣) 즉 기 쌓기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도의 정신집중과 심리적  평정 효과가 크다.


가까이 보는 사람마다 걱정하다시피 나는 몸을 너무 험하게 쓰는 편이다.  그런 내가 목욕탕에 가서 수건으로 흰머리를 감추기라도 할작시면 모르는 사람은  오십대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제부터 단전수련에 들어갈까 하는데 그리되면 심신의 상황이 또 어떻게 달라질까? 자못 궁금하고 또 기대된다.


나에겐 단 한 번도 뵌 적 없고 목소리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또 한 분의 스승이 계신다. 참선의 대가이자 원로 공학박사인  박희선 교수님이시다.
 그 분의 저서 <생활참선>이  절판된 모양인데 아쉽고 또 아쉽다.


<특별 후기-다음 글을 꼭 읽어보세요>

숨이란 한 마디로 가슴통과 배통을 경계 짓는 횡경막의 피스톤 같은 상하 왕복운동이다. 갓난아기는 하단전(배꼽 아래 손가락 세 마디 위치)을 중심으로 호흡한다(복식호흡). 들숨 때 횡경막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하단전부위가 볼록해지고 폐가 넓어져 많은 공기가 들어온다. 날숨 때는 횡경막이 위로 올라가면서 단전부위는 낮아지고 폐가 좁아져 많은 공기가 밖으로 나간다. 나이 들면서 횡경막 운동은 위로 치우치게 되고(흉식호흡) 마지막 숨길은 어깨와 목으로 깔딱깔딱 쉬다가 끝내고 만다. 가슴(흉식)호흡으로 바뀐 성인들의 숨쉬기를 조금이라도 복식호흡으로, 더 나아가 단전호흡으로 다시 바꾸면 건강과 기력이 왕성해진다. 왜냐면 피스톤(횡경막)이 아래로 충분히 내려갈 때 가슴통이 충분히 넓어지고 폐활량은 저절로 커진다. 이 때 심장도 넓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게 된다. 또 피스톤이 아래로 내려가 배통을 압박할 때 배통 안에 고여있던 많은 피는 심장으로 펌프질 하게 된다. 심폐기능이 더 할 나위 없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 피스톤의 왕복운동(복식호흡)은  내장을 마사지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여기에다 단전호흡을 얹으면 기가막힌 양생법이 된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랬는지 단전수련을 하다 말다 하였다. 그렇지만 복식호흡만은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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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아래의 글은 경향신문에서 기획한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의 세번째 편이다.
박명림 교수(연세대. 정치학)가 김상봉(전남대 철학)교수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박교수는 이 글에서 촛불시위에서 터져나온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예를 들며, "참된 민주공화국 건설을 위한 국민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 대안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시사점을 주는 글을 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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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 불변의 정신·원칙·비전

김상봉 선생님, 안녕하셨는지요. 이제 저희들의 대화가 각론으로 넘어가는군요. 오늘은 우리 헌법의 제1조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 헌법은 여러 조항에 대한 문면적(文面的)·법리적 해석에 비하면 역사와 사회, 미래의 관점에서의 정신·가치·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안 되었지요. 헌법 논의, 해석, 적용의 권한 역시 소수 법률 엘리트들에게 독점되어 있었고요. 그 결과 헌법은 국가와 국민, 사회의 역사·정체성·비전·정신·가치와 관련된 근간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촛불 시위의 ‘헌법 1조’ 외침은 주권회복 = 대의철회 의미 담겨

그런데 2008년 촛불집회를 계기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거리에서 시민들이 헌법 제1조를 제창하면서 헌법은 법전 속에서 살아나와 국민과 민중의 조항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반복된 외침은 ‘시민의 헌법 발견’이자 헌법정신과 가치가 추상에서 구체로 비약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6월항쟁 때의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에 비견됩니다. 헌법문제가 이토록 광범하게 거리에서 불려지긴 6월항쟁 이후 처음이지요.

유신헌법 및 5공헌법 철폐투쟁과 달리 촛불시위의 헌법1조 제창이 지니는 의미는 ‘독재헌법’을 향한 ‘개헌투쟁’이 아니라 국가주권과 국가이익을 둘러싼 정부의 헌법정신 일탈에 맞서 ‘민주헌법’의 ‘해석주체’와 ‘해석권한’을 국민화·시민화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입니다.

이때 국민화·시민화는 헌법제정 주체 자신에 의한 헌법의 정치화·사회화라는 의미를 함께 담지요. 즉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주권회복=주권회수=대의철회의 측면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국민해석, 시민해석의 국면에 진입한 헌법1조를 정확하게 자리매김하고 이해하는 문제는, 단순한 촛불해석이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비전, 진로와 관련해 무척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헌법1조의 연원, 내용, 의미를 차례로 말씀드리며 선생님의 철학적·인문적 해석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건국헌법의 등장을 근대 이래 한국의 헌법혁명의 산물로 설명해왔습니다. 헌법혁명 개념은 민주혁명, 산업혁명, 국민혁명처럼 근대로의 이행에서 헌법부문의 혁명적 변화를 통한 입헌민주주의의 등장을 지칭하지요.

1919년 임정때 ‘민주·공화’ 첫결합…48년 건국때 최종확정 바뀐적 없어

먼저 국호를 보면 1948년 건국 당시 채택된 ‘대한민국’ 국호의 ‘대한’은 1899년 수립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로 올라갑니다. 이때 조선 ‘왕조’를 뛰어넘는 ‘국가’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고, 대한이 천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대한국국제는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헌의6조 등 초기 근대 공화주의 운동이 지향한 입헌군주제, 군민공치(君民共治)를 배반한 군주국가였습니다. 당시 고종과 엘리트가 입헌군주제와 군민공치를 수용, 공화주의 통치를 시행했으면 한국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념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후 대한제국의 몰락, 한일병합, 3·1운동을 거치며 급속히 성장한 공화주의 의식과 운동은 마침내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지요. ‘대한’과 ‘민국’, 당시의 최초 결합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민주공화’라는 말이 처음 헌법 제1조로 등장합니다. 90년 전 1919년 4월11일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였습니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흥미롭게도 3·1운동의 해에 대한민국과 민주공화라는 말이 동시에 헌법에 등장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말 이래의 근대국가 건설운동, 특히 당시 아시아 최대의 공화주의 민중운동이었던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최초의 근대적 공화정부였지요.

첫 등장 이래 헌법1조는 바뀐 적이 없습니다. 2차개헌(1925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 3차개헌(1927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국권은 인민에게 있다”, 5차개헌(1944년):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제4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전체에게 있음”. 1919년 9월 1차개헌에서는 제2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게 재함”이 추가되었지요. 촛불 때 부른 현행 헌법1조(1·2항)의 원형은 건국 훨씬 이전에 등장했던 것이지요. 그만큼 대한민국의 정신·원칙·비전의 고갱이가 오롯이 들어 있는 조항입니다. 놀랍게도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정신은 물론 헌법의 구성·편제·순서까지도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유사성은 현행 헌법까지 이어집니다. 미군점령하에서 만들어졌음에도 건국헌법에 미국의 영향이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유신헌법철폐·민주화 운동 등…헌법 가치가 목표실현 기폭제

해방이 되자 신생국가 건설을 위한 헌법제정 노력이 분출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민주공화’ 정신과 가치의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일치였습니다. 저는 당시의 거의 모든 시민·사회 및 기관들의 헌법안(17개)을 입수해 분석하면서 이 일치를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랐습니다. 거의 모든 초안들이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국호는 한국·조선·대한민국이 혼용되었으나 “민주공화국” “민주공화체”라는 규정은 불변이었습니다. 좌파인 민주주의민족전선마저 “조선민주공화국 임시약법”(시안: 1946년 1월)이라 하여 민주와 공화를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다만 국회 제출 직전의 두 초안은 주권 조항을 “한국·국가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발한다”고 규정해 인민주권을 천명했습니다.

그러면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헌법 제1조는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이것을 국가의 근본정신과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이상적 결합, 즉 민주공화주의로 해석합니다. 민주공화국가·민주공화주의야말로 건국 이래 대한민국의 제일 공준이요, 공동선인 것이지요. 한말 개혁운동으로 시작된 초기 공화주의의 솟아오름부터, 1919년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의 등장과 함께 ‘민주+공화’(=민주주의+공화주의)의 결합을 통한 헌법화 단계를 거쳐, 1948년 건국시점에 최종 확정된 대한민국의 정신·가치·비전의 제일 근간인 것입니다. 어떤 헌법변경세력도 수정,변화,삭제할 수 없는 근본원칙이지요.

제1조가 민주공화주의의 정신을 밝혔다면, 제2조는 주권의 국민소재 및 권력의 국민발원을 밝힌 것입니다. 이는 국가권력의 형성과 존립, 정당성의 근원을 국민에게 부여한 조항으로서 국민주권의 원리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인민주권에 반하여 국민주권 원칙을 천명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권력의 소재가 국민에게 있음을 밝히는, 인민주권과 국민주권의 포괄적 혼합이었습니다.

사실 임시정부 헌법부터 대한민국의 헌법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추구한 삼균주의에 기반한 공화주의를 뼈대로 삼고 있습니다. 건국헌법은 “기회균등, 개인능력 발휘 보장, 책임과 의무 완수, 국민생활의 균등 추구를 기본으로 사회정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강조했습니다. 각인의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고 했고요. 당시 “균형있는 국민경제발전” “경제민주주의”는 “우리나라 경제질서의 원칙”으로 불렸습니다.

실제로 경제는 주요 자원의 국유, 무역의 국가통제, 운수·통신·금융·보험·전기·수리(水利)·수도·가스·공공기업의 국영 또는 공영 등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철저한 공공·형평·균등을 추구하도록 규정되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균형을 통해 건국헌법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공화주의원리에 가까운 헌법의 하나였습니다. 압축근대화의 토대를 놓은 1940~50년대 초기 평등주의 변혁, 즉 토지개혁과 교육혁명이 가능했던 것 역시 북한 급진주의와의 경쟁에 더해, 이러한 오랜 공화주의 전통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급속한 탈공공화 심각한 도전…참 ‘공화’ 위한 새로운 분출 필요

이제 헌법1조의 거시적 영향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현실과 헌법의 차원, 둘 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헌법 1조에 관한 한 그동안 규범과 사회, 조문과 현실이 일치되거나 근접하지 못했지요. 어떤 현실은 조응했으나 거의 대부분은 부조응했지요. 그러나 초기 출발조건은 거시적 영향을 미칩니다. 즉 최초의 규범과 제도의 가치는 비록 현실에서는 부족하더라도 목표로서의 의미를 지녀 미래 비전을 제시해주거나 또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촉발한다는 점입니다. 민주화운동이 유신헌법이나 5공헌법 철폐를 둘러싸고 전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제정 이래 헌법1조의 민주공화주의는 현실적으로, 헌법·법률적으로 모두 도전받아 왔습니다. 현실적 차원에서는 헌법파괴를 통한 권위주의 체제의 등장과 연장처럼 헌법1조와 헌법정신을 유린한 것도 없습니다. 헌법파괴세력이 헌법준수, 법치, 준법을 주장한 것이 민주화 이전의 한국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독재정부의 헌법파괴에 대한 헌법복원노력의 의미를 담는 것이었지요. 민주화 이후 국가의 급속한 사사화·탈공공화 역시 민주공화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반공화성의 핵심인 부패는 모든 정부에 걸쳐 있고요. 헌법·법률 차원에서는 국가보안법과 유신헌법이 그것입니다. 이들은 헌법1조의 풍부한 민주적 자장과 넘치는 공화적 수원, 즉 민주공화적 상상력과 체제 디자인을 좁은 반공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위축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점은 다음 편지에서 자세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두 번의 민주공화주의 흐름이 밑으로부터 분출했습니다. 첫째는 한말-식민-해방-건국 시기로 근대 국민국가 건설로 귀결되었고, 두 번째는 민주화운동 시기로 87년 민주화를 거쳐 민주정부의 달성이란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주공화주의, 민주공화국은 헌법 제1조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권위주의 시기에는 무엇보다 민주주의 파괴로 인해 실현불가였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화가 자유화와 탈공공화, 특히 시장·기업의 자유화와 국가의 탈공공화로 귀결되어 참된 공화성과 공공성은 달성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둘을 만나게 해야 할 때입니다. 참된 민주공화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세 번째 시민적·국민적 운동이 터져나와야 할 시기이고, 그것을 위한 한 공준이 민주공화주의와 대한민국 헌법1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운동에의 참여야말로 오늘의 한국 시민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시민덕성이요,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나에게로 귀결되지 않는 공화국 문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편지는 여기서 줄이며 선생님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출처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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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iale 2009.05.07 13:18 address edit & delete reply

    아무리 헌법이라도 자연질서를 바꾸지는 못하지요.. 예를들어 헌법에서 "중력의 존재를 부인" 한다고 써놔도 틀림없는 과학적 사실자체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경제적 질서도 마찬가지지요.. 헌법에서 아무리 공영 또는 국영을 외쳐도, 시장경제의 원리상 민영의 경쟁력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헌법에서 인간다운 삶과 민주주의의 체제를 규정하는 건 옳치만 경제원리마저 심각하게 간섭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법에 의한 인권침해가 아닐까요?

진보세력 집권때, 국정 프로그램 있나?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을 제기한 손석춘(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진보정치세력에게 실사구시에 기반한 "책임질 비전과 정책"을 제기하고 나섰다.
곱씹어 볼만한 의미있는 글이어서, 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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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뜻을 살리려면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다만 조급할 일은 아니다. 새로운 정당이 성공하려면 먼저 정치세력화의 기반이 튼실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으로 나누어져있는 진보정당은 물론,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의 일부 세력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시민사회단체들의 몫도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치세력화의 기반을 튼튼하게 꾸리고 새로운 정당을 아래로부터 내올 수 있을까. 그 과정에 촛불을 든 모든 사람들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 물론, 무조건 모든 사람이 나서자는 이야기는 공허할 수 있다. 진보적 정치대안을 만들어가는 길, 곧 진보의 진보적 재구성을 이루는 길에 원칙이 필요한 까닭이다.


진보 재구성의 제1원칙 실사구시

무엇보다 먼저 실사구시의 원칙이 절실하다. 실사구시란 말 그대로 사실에 기초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다.
고전을 읽다보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당선언』(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의 독일어판 서문(1890)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에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사건과 변화로 인해, 특히 승리보다도 패배로 인해 투사들은 자신들의 만병통치약(universal panacea)이 지금까지 부적절했음을 깨닫고 노동자 해방의 진정한 조건을 철저히 이해하기 위해 더 한층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엥겔스가 그렇게 주장한 근거다. 엥겔스는 “1874년 인터내셔널이 해체될 당시의 노동계급은 그것이 설립된 1864년의 그들과는 전혀 달랐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 10년의 변화도 엥겔스는 소홀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이론을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부르대지도 않았다. 언제나 “노동자해방의 진정한 조건을 철저히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물며 그로부터 두 세기가 바뀌었다. 그 사이에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이 있었다. 세계사의 전개과정은 자본주의 사회가 부닥친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소련-동구의 몰락과 중국의 전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고난’은 우리 모두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다. 그 사실에 기초할 때, 우리는 경직된 사상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진리를 탐구해야 할 필요성을 더 절감할 수 있다.

책임지고 실현할 비전과 정책 제시할 때

막연한 이상주의와 구호 수준의 담론을 넘어서서 실제로 신자유주의로부터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조건과 정책을 철저히 파고들어야 옳다. 진보세력이 집권했을 때 현재의 정치경제 체제와 전혀 다르게 국가를 책임질 수 있는 구체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실사구시가 필요한 이유는 관념적 이상주의의 모호한 비전이 분열을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중의 삶, 민중의 고통이 엄중한 데도 경직된 사상에 기초해서 주자학적 논쟁에 치중하면 반목하거나 갈라질 수밖에 없다.
책임지고 실현가능한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 대다수인 민중의 이해관계에 기초해 실제 ‘경제 살리기’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실사구시의 원칙이 중요한 까닭이다.



출처 :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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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4.29재보선과 촛불 1주년.
그리고, 앞으로도 산더미처럼 남아있는 정치일정. 10월 재보선, 2010년 지방선거.....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세력,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손석춘(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의 글이 의미심장해 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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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을 맞아서도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하며 여전히 폭력적 탄압을 서슴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 정권을 대체할 정치적 대안이 없다는 오만 때문이다.
기실 2008년 ‘촛불항쟁’ 내내 어떤 정당도 촛불을 든 민주시민들의 대안으로 믿음을 주지 못했다. 국민 대다수인 민중에게 더 심각한 문제는 촛불항쟁이 벌어졌던 2008년 5․6․7․8월과 촛불항쟁 첫 돌을 맞는 2009년 5월은 객관적 세계정세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촛불 1년 맞아 국민 대다수의 고통은 더 커져

2008년 9월 본격화한 미국의 금융 위기는 세계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위기로 치닫고 있다. 그 결과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중소기업 도산과 자영업 몰락, 실업률 급증이 현실화하고 있다. 민중의 생존권이 더 위협받는 국면이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할 때, 민중의 고통은 무장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환할 조짐이 보이지 않기에 더 그렇다.

그렇다. 촛불항쟁과 그 후 1년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경제와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은 익어가는 데 주체적 조건은 준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주고 있다.
따라서 진보의 과제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답은 자명하다. 정치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일이다. 비단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중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통일운동이든 정치적 구심점이 없을 때, 각 부문의 운동 발전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 대안 만들지 못하면 박근혜 정권 가능성

이명박과 한나라당 정권에 맞설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앞으로 더 많은 민중의 고통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정권이 들어설 수 있다. 박근혜의 ‘줄푸세’정책에서 드러나듯이 그와 이명박의 경제정책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바로 그렇기에 진보세력의 대안은 더 절실하다. 물론, 정치지형에서 진보세력이 외면 받는 데는 외적 요인이 크다. 반세기 넘도록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이데올로기가 그 주범이다. 비단 언론만이 아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 교육을 통해 “경쟁만이 살 길”이라는 자본독재의 이데올로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내면 깊은 곳까지 침투하고 있다. 외적 요인은 냉전에서 ‘승리’한 초강대국 미국의 현실적 힘을 정신적, 물리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외적 요인이 설령 지배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요인만 강조한다면, 주체적 대응에 게으를 수밖에 없다. 가령 “언론 탓”만 한다면, 임기 내내 언론을 지청구 삼아 좌충우돌로 5년을 보낸 노무현 정권과 우리가 다를 게 없다. 노 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도 늘 ‘진보’를 자처해 진보세력 전반에 대한 국민 불신을 불러왔다. 그래서다. 외적 요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내적 요인을 더 중시해야 옳다.

새로운 정당 이전에 정치세력화의 기반 성찰할 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과 민주당 일부로 흩어져있는 진보적 정치세력이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과 더불어 정치적 대안을 만들려면 재구성이 관건이다. 현재 네 정당 가운데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 집권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정치적 구심점이 절박하다고 해서 지금 당장 새로운 정당을 누군가 주도하거나 ‘헤쳐 모여’식으로 만들 수도 없다. 촛불항쟁에 나섰던 모든 세력이 지금 할 일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내기 이전에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기반을 튼튼하게 마련하는 일이다. 바로 그것이 진보의 진보적 재구성이다.

여기서 ‘진보적 재구성’이라 할 때 그 대상인 동시에 주체는 진보정당의 정치인이나 당원들만이 아니다.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학생운동, 시민운동, 통일운동만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국민이다.



출처 :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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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공동의 가치가 없는 사회

경향신문 기획보도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
김상봉(전남대 철학)-박명림(연세대 정치학) 서신대화를 통해 "새로운 공화국"을 논의합니다.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의미가 있을 것 같아 퍼옵니다.


<2편> 박명림교수가 김상봉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대한민국은 공동의 가치가 없는 사회"

김상봉 선생님, 안녕하셨는지요. 이제 여독이 좀 풀리셨나요? 새해의 시작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우리들 개인과 주변을 둘러싼 거의 모든 일들이 하나도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읽으며 한편으로는 한국현실을 고민하는 정치학도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 속한 시민으로서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제 생각엔 오늘의 한국사회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되어있지 않나 싶습니다. 민주화 이후 20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진행되던 변화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급격하여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공론, 공익, 공준, 공공성, 공동가치나 정신이라고 할 어떤 합의나 합의의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공동 가치 없는 공화국’ ‘공준 없는 공동체’, 이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가치와 행동의 탈공공화야말로 오늘의 상황을 근거짓는 핵심인 동시에 한국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의 혼돈과 미래의 불안의 근원 역시 따지고 보면 모두 공준 창출의 실패에서 출발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합의 가능한 공준과 공공성을 찾아 바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여겨집니다. 물론 갈등의 건강성 또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거쳐야겠지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은 그래도 ‘경제발전’ ‘민주화’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나름대로 합의된 가치와 준칙이 존재하여 암묵적인 공준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국가주의에 의한 강제로서의 합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하게 합의된 지향가치로서의 공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넓은 합의는 현실의 부조리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준 사회적 비전을 의미했지요. 진보와 보수, 좌우가 공히 인정하는 공정한 발언으로부터 파생하는 귄위와 영향력을 갖는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 경제인도 존재했고요.

그러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 가치도 인물도 그룹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와 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고 언론과 지식과 종교의 역할붕괴처럼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습니다. 지금 공적 가치 창출과 대화의 중심이어야 할 정치에 공준이 존재하나요? 공공성과 공론의 전달자여야 할 언론에 최소한의 싹이라도 있나요? 공준, 공공성이 존재하질 않자 이를 대체하는 다른 흐름들이 이 사회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중 사사화(私事化), 역(逆)근대화, 근본화, 파당화의 네 가지가 핵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먼저 사사화를 볼까요? 사회의 최소 공공 준거에 대한 합의가 부재하자 이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사적 관점과 이익의 전면화와 극대화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시장과 기업의 논리가 전체 국가와 사회를 장악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시장과 기업의 창의성, 경쟁성, 효율성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경제는 인간들이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한 근본요소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적 기업논리가 인간생활, 국가, 사회의 다른 모든 공적 영역까지 지배해나갈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마저 사익 대변자로 전락하며 공공성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공적 기구들이 공공성을 상실하면서 개인들이 생존과 생활을 위해 직접 시장과 대면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사회화, 형평화, 복지화를 통해 국가·사회의 공공성, 민주성, 휴머니즘을 동시에 제고하였던 역사적 보편경로로부터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지배적 담론과는 정반대로, 사사성이 아닌 공공성의 제고야말로 삶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 공공성의 한 징표인 한국의 현재 공적 사회지출은 30년 전 민주국가들이 도달했던 수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시민성과 공공성의 표상이어야 할 국가와 정부가 ‘사적 시장정부’ ‘유사 민간기업’이 되어있고 대통령은
‘CEO 대통령’으로 불립니다. 아니 정부와 대통령 자신이 그런 방향으로 가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시민친화 또는 민주주의 친화나 민주공화국 친화가 아니라 공공연히 기업친화, 시장친화를 말해오지 않았습니까? 세계의 민주주의 역사에 비추어 본말 전도도 이런 전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저는 당시 유행하던 CEO 대통령 담론을 두고 오토 아펠이나 하버마스의 개념을 빌려 전형적인 ‘수행모순’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언어나 개념이 형성되는 순간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명제나 조건과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사익·시장·경쟁을 대표하는 CEO로서 성공하면 할수록 공익·균형·조정을 표상하는 대통령으로선 실패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으로서 성공하려고 하면할수록 CEO성격을 버려야 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지요. 즉 ‘CEO 대통령’은 어느 하나를 빨리 버리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공동체를 파국으로 이끌어갈 것이라고 봅니다. 국가와 정부에 공익, 공공성이란 양도할 수 없는 최소 존재요건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말씀하셨듯 공화국이란 나라가 공공적 기관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사화의 진행과 함께 두드러진 현상은 바로 역근대화입니다. 우리는 근대성의 표상으로서의 제도적 민주공화국을 수립한 지 두 세대 만에 세계사에 유례가 드물게 근대화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공화화를 포함하는 근대화란 무엇입니까?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 가치, 공적 지향에의 합의를 통한 사적 신분, 출신, 세습, 주인-노예나 귀족-평민 같은 양극 사회로부터의 해방이 아니었나요?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는 재산의 불평등·양극화가 교육·기회·취업·수입·신분의 극심한 불평등으로 연결되고 두렵게도 공공성·공화성의 표상인 공직·대표구성까지 좌우하고 있습니다. 중간과 중심의 강화를 통해 신분과 재산과 기회의 양극성을 넘어 통합을 지향한 것이 근대화요, 공화화요, 민주화였다면 제가 아는 역사지식으로는 요즘 우리 사회처럼 거꾸로 가는 근대화와 공화화는 존재한 적이 없으며 사사화를 통한 세습사회를 공화국이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문제는 이런 양극사회가 통합과 안정 속에 지속된 사례가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부족한 대로 비교적 일찍 시민적 공화주의나 사회적 연대, 공공성, 사회화를 주창한 것은 무슨 평등주의나 급진주의를 추구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인간화를 통해 이 사회의 해체를 막아보자는 소박한 시민윤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양극사회로 진입했고 더욱 절망적인 것인 부모의 경제, 사회적 양극지위와 자녀의 꿈, 교육, 기회, 수입의 양극성이 거의 비례하여 전승되는 근대이전 사회로 역진입하였음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 역동성의 다른 표현은 삶의 높은 불안정성인데 저는 이것이 바로 엄청난 탈공공성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공준의 부재는 또한 문제판단과 갈등의 근본화·근본주의화와 적나화(赤裸化)로 직접 연결되고 있습니다. 공론이나 공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사회갈등들은 대부분 그것의 성취를 둘러싼 절차나 방법, 자원배분에 관한 적정 갈등 또는 최소 갈등에 머무르지만 한국사회의 갈등은 언제나 근본적 이념과 가치를 둘러싼 최대갈등, 또는 감정대립으로 치닫곤 합니다. 사회·정치적 언어 역시 ‘친북좌파’, ‘수구꼴통’, ‘척결’처럼 폭력적이기 이를 데 없지요. 즉 한국사회의 또 다른 특징인 근본화로서 인간 생활의 가장 나중 또는 근본인 개인적 실존 차원의 범주들이 사회적, 정치적 판단과 행동의 기준·준칙으로 부상하였다는 점입니다. 공준이 존재하고 국가의 공공성과 중간 집단의 바른 역할이 있었다면 나타나기 힘든 현상입니다.

늘 근본주의로 돌아가니 가치의 교환을 통한 공존 체계인 정치마저도 이들 근본화의 영향을 받아 좀체 타협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근본화는 예컨대 종교화, 이념화, 지역화를 말합니다. 모두가 근대화, 민주화, 공화화의 진전과 함께 사회갈등의 전면에서 물러나야 했던 요인들이 점점 더 중요한 정치행위와 갈등요인으로 불러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다른 공공적, 민주적, 사회적 의제들은 묻히게 되고 말지요.

끝으로는 파당화를 들고 싶습니다. 이는 특히 사회문제의 수렴을 통한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 언론, 종교, 대학, 조합, 경제·사회단체와 같은 중간기제들에서 더욱 격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와 타자, 적과 동지, 흑과 백, 선과 악, 진보와 보수를 가른 뒤 모두 자기가 속한 쪽의 논리와 이익만을 부르짖을 뿐입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이익과 그것을 정당화해줄 파당적 이익과 이념을 전제로 판단하고, 또 거의 오로지, 그리고 철저하게 그것을 위해 발언하고 있습니다. 모두 자기가 속한 진영을 대변하고 자기진영에게 확인받기 위한 파당적 내지르기는 존재하나 상대 진영과의 대화를 향한 발언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공적 말의 신뢰가 붕괴되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옳은 말도 상대진영의 것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자기안녕과 이익은 상대의 그것을 인정할 때 확보된다는, 즉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공동체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기본 철칙조차 망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관계와 만남은 완전히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외려 한 공동체 내의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상대 진영은 공존이 아니라 제압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따라서 참된 의미의 대화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대화란 서로 다른 생각과 이익 사이의 인정, 존중, 교환이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에게 본래적 의미의 대화는 실종된 지 오래입니다. 사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시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갈라져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갈라놓았고 이것을 무엇으로, 어떤 가치와 이념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요?

공적 관계와 공준의 부재, 사사화, 파당화는 근대적 계약관념조차 소멸하여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급기야 예종적·굴종적 인간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탈공공화의 궁극적 귀결로서의 비인간화이지요. 그리고 저는 이 점, 즉 ‘공적 시민’과 ‘인간적 사회’의 회복이야말로 공화국을 다시 세우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할 이유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최소 생존을 위해 온갖 사적 이해관계에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내어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근대적 주체로서 체결한 계약관계는 사라지고 전근대적 주인-노예관계가 재등장하게 되지요.

예컨대 수많은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정규직과의 경제적 수입의 차이를 넘어 최소한의 삶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파괴된 상태로 내몰려 삶의 순간순간 인간적 차별과 모멸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참아야 하는 굴종은 그들을 목적적 존재가 아닌 지위로 매일매일 내몰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회체제가 일단 최소 공공성과 계약관계라도 유지하여 품위와 격조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안정과 자존을 유지할 수 있는 체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것은 정말 공화국의 한 시민으로서 저의 최소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다시금 옷깃을 여미고 시민적 공공성에 기초한 새로운 공화국을 향한 꿈을 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소 생존과 자존의 제공의무는 국가와 사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공적 역할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또 사회 중간집단들의 공공성 회복은 가능하며 시민주체성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공준 창출과 확대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선생님과 함께 이 물음들을 되새기며 오늘의 편지를 맺습니다. 평안하시길 빕니다.

출처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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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화국은 필요한가?

경향신문이 기획하여 지난 1월 4일부터 게재한 "김상봉(전남대 철학)-박명림(연세대 정치학) 서신대화"를 퍼온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 - 공화국"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는 서신의 내용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시사점을 준다.


[제1편] 김상봉 교수가 박명림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새로운 공화국 논의를 제기하다"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는지요? 새해 인사로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으나 이번에는 정초부터 세상이 너무 뒤숭숭합니다. 저는 지난달 중순쯤에 학회 일로 스페인에 다녀왔는데 떠나기 전에는 일제고사에 반대했던 교사들을 파면·해임한다고 야단이더니, 돌아오니 이제 방송법으로 법석이군요. 그걸 보며 저는, 어쩌면 제 무덤을 파는 일에 저리도 열심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분노보다 연민의 감정이 먼저 듭니다.


이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20~30년 만에 한 번씩 거대한 민중봉기가 일어났음을 상기하고, 1987년 이후 잦아들었던 항쟁의 에너지가 머지않아 폭발적으로 분출하리라고 예견해왔는데, 지금 이 정부가 하는 행태를 보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정권의 위기가 닥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국가기구가 어떻게 국민의 손에 의해 전복될 수밖에 없는지를 가장 눈부시게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그런데 그 엄연한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자들이 지금의 집권세력이니 어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그것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까닭은 지금의 집권세력이 오래 가지 못하더라도 그 뒤가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이 땅의 씨알들은 나랏일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물을 것입니다. 그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낡은 길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 길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나라를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는 데는 영웅적인 용기를 보였으나, 과연 무엇이 바람직한 나라인지 생각하는 일에는 게을렀던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하지만 설계도 없이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아무런 이상 없이 나라를 세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87년 6월항쟁을 통해 마지막으로 독재 권력을 무너뜨렸음에도 불구하고, 허망하게도 20여년 전 우리가 몰아냈던 독재권력의 후예들에게 다시 국가권력을 헌납한 까닭도 우리에게 새로운 나라에 대한 전망이 제대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단순한 비판과 부정이 아니라 나라를 형성하기 위한 이상과 척도를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바람직한 국가에 대해 생각하는 일에 서툰 까닭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고전적 사회주의 이론이 국가를 소멸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알게 모르게 국가에 대한 적합한 인식은 물론 바람직한 국가에 대한 상상을 억압해온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시즘에 따르면 바람직한 국가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퇴행적인 일로 치부되는 까닭에 엄연히 국가의 울타리 속에서 살고 있고 내심으로도 국가의 소멸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짐짓 국가의 파괴와 소멸을 입에 올릴 뿐 바람직한 국가를 어떻게 형성하고 건설할 것인지를 물을 수 없었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고, 아직도 그 관성이 다 청산되지 않은것이 국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 한국의 진보진영에 고전적 사회주의자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다수는 일찌감치 옛 마르크스, 레닌이 꿈꾸었던 혁명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국가소멸론 따위에는 더 이상 아무 관심도 없으므로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을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국가의 상이 하나같이 다른 나라 학자들의 이론을 빌려온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남의 철학을 가지고 제 나라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남의 이론은 남의 역사에 뿌리박고 있는 까닭에 이 땅의 씨알들의 역사적 기억과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는 나’라는 자아의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 자아의식이란 자기에 대한 기억인 동시에 미래의 자기에 대한 욕구와 동경입니다. 그 기억과 동경이 조화롭게 맞물릴 때 비로소 나의 존재는 안정됩니다. 이런 사정은 집단적 주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한 겨레의 역사적 기억과 미래의 이상이 균형을 이룰 때 역사 속에서 안정된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새로운 나라의 이상이 우리들 자신의 역사적 체험으로부터 자라나온 것일 때만 민중은 그것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이상이 대중성을 가질 때 비로소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됩니다. 하지만 남에게서 얻어온 국가의 이상이란 민중의 역사적 기억과는 단절된 것인 까닭에 그 자체로서는 이 땅의 씨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민족이 다른 민족과의 만남 속에서 자기를 형성하지만, 남에게서 배운 것도 자기 속에서 따라 체험하는 한에서만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족의 역사에 뿌리박지 못한 이상은 죽은 이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난날 많은 사람들이 단지 국가폭력만이 아니라 그 국가에 대항하여 싸웠던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 치유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주위에서 국가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공동체에 대해 조건반사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공동체를 불신하는 사람에게 바람직한 공동체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의미를 가질 리 없으니, 이들의 관심은 온전한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가기구 또는 일체의 공동체에 포획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탈주의 자유란 망상일 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폴리스 속에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스스로 형성함으로써 그 주인으로 자유를 누리거나 아니면 국가의 노예로 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즉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고 치유하면서 우리 자신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바람직한 나라의 이상을 이끌어내는 일입니다.

여기서 제가 이웃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는 것이 무슨 단체나 조직이 아니라 온전한 만남의 문제라는 것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참된 나라를 꿈꾸는 것은 국가기구에 종노릇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슨 추상적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오직 너와 내가 온전히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참된 만남 없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우정 없이 행복이 있을 수 없다면 참된 만남이란 가장 중요한 개인적 욕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욕망이 충족되고 자유가 실현되는 만남의 지평이 바로 나라입니다. 국가가 타락하면 우리의 만남이 왜곡되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이 불행해집니다. 그런 까닭에 이상적인 나라는 당위 이전에 자연스러운 욕망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적인 나라 자체는 추상적인 이념인 까닭에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이상국가의 도식이나 전형이 있게 마련입니다. 300년 전이었다면 성인이 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이상국가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30년 전에 참된 나라를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독재국가 아닌 민주적 국가를 생각하는 것을 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사라진 지금 누구도 단순히 민주국가가 우리가 꿈꾸는 참된 나라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같이 만들어나가야 할 나라의 이름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바로 공화국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키케로나 루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이 말하는 민주공화국이며, 동시에 지난 봄 여름 촛불시민들이 요구했던 민주공화국입니다. 요구하는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현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민주국가가 문제라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독재에 대한 항쟁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고 또 불완전하나마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습니다. 촛불시민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외쳤습니다만, 이명박 정권은 두 번의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확고히 권력을 위임받은 정권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공화국입니다. 그것은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구별하자면 민주국가에서 더 나아가 온전한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지난번 촛불항쟁을 통해 명확히 표출된 시대정신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공화국이란 나라가 공공적 기관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불완전한 예외를 제외하면 왕조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의 국가기구는 한 번도 온전히 공공적 기관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소수의 권력집단이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적으로 점유한 수탈과 억압의 도구가 국가기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공공성이란 나라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상실하면 나라는 더 이상 나라일 수 없으며 우리가 그런 나라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나아가 민주주의 역시 공공성의 원리가 없다면 내용 없는 형식으로 껍데기만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극히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이명박 정부의 폭정에서 똑똑히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즉 지금까지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도 이제는 공화국에 대해 말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하지만 공화국은 무엇이며 공공성은 또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 나라 역사의 어떤 지점에서 공화국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이상을 찾는 것은 누구보다 철학자의 일이지만, 그 이상이 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 속에 뿌리내려야 하는 까닭에 이제 저는 한국정치사를 실증적으로 연구해 오신 선생님께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나라에 공화국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공화국을 꿈꾸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현재의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서 참된 공화국으로 통하는 길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성가시지만 피할 수도 없는 물음으로 선생님을 초대하면서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세상이 비록 혼돈뿐이더라도 선생님께서는 평안하시길 빕니다.

출처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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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풀어쓰는 "우리 사는 이야기" (2)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자 시인이신, 이수호 선생님께서 당신이 쓰신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 에 수록된 시를 낭송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따뜻하게 전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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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풀어쓰는 "우리 사는 이야기" (1)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자, 시인이신 이수호 선생님께서 본인이 당신 시집인 "나의 배후는 너다" 에 수록된 시들을 낭송하며, 시에 얽힌 이야기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를 따뜻하게 전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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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노래와 이야기가 있는 "진보"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가 잔잔한 감동으로 "진보"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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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적에게서 배운다.

새 자동차의 총아로 촉망되는 하이브리드 카의 시초는 1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해상수송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던 독일 U보트의 하이브리드 엔진이었다고 합니다. 물 위에서는 디젤 엔진을 썼고 잠수했을 때는 소리 없는 전기엔진으로 바꿔 썼던 것입니다.

현대전에서 첨단 무기에 못지않은 전술의 한 유형으로서 공수(낙하산)특전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이탈리아의 시칠리섬을 점령한 연합군을 공략할 때 처음 썼던 전술이었는데, 연합군 측에서 그 놀라운 전술을 바로 배우고 더 발전시켜 큰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갖가지 대독 전략전술을 독일에서 배워 독일에게 사용하여 독일을 이겼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히틀러는 영국 폭격이 어려워지자 비행기 대신 도버해협을 건너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날아가는 폭탄, 즉 로켓(미사일의 원조)를 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전에 사용하기 전에 독일의 패망으로 전쟁은 끝났고 이 군사과학의 기밀을 선점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은 대대적인 첩보전을 치렀다고 합니다.  

위력 있는 전략전술과 무기를 창안하였지만 오히려 적에게 가르쳐 준 자는 패하고 적에게서 오히려 배우고 심화 발전시켜서 실전에 사용한 자는 이겼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새겨 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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