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정의'가 실종되고, 법은 '상식'이 무너지고..

그 나라가 위기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척도는 경제의 몰락 척도, 공공질서의 파괴 정도와 사회구성원의 가치관 타락 유무에 있다.
그리고, 질서와 가치관은 정치, 법의 유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그 어떤 천지개벽이 일어나더라도 정치가 제대로 다스리고 법이 옳게 정리하면, 공공질서는 유지될 수 있고 사회구성원이 올바른 가치와 도덕으로 제자리를 잡을 수 있으며, 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사소한 것으로부터 출발해서도 질서가 파괴되고 사회구성원의 가치관과 도덕이 일거에 무너지고, 경제가 급격히 몰락할 수도 있다.


정치와 경제, 법이 중요한 근본 이유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무엇도 아닌 가장 근본적인 것이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 미디어 악법을 둘러싼 정치와 법의 현재를 말하는 것이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국민적 우려와 야당의 견제, 사회적 합의를 일거에 무시하고 일방통행을 고집했다.


낙하산 인사를 통해 언론을 압박하고, 언론을 직접 탄압하여 순응시키고, 이젠 법을 바꿔 친정부 언론을 만드는 수순을 밟았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와 국민들의 처절한 반대의 외침과 몸부림은 '날치기와 위법'의 힘으로 간단하게 제압했다.


정치에 "정의"가 사라진 것이다. 힘을 앞세운 폭력의 정치만이 나부꼈다.


결국, 삼권분립이 정립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부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채 사법부에 결정을 넘긴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법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회 표결과정에서 절차상의 위법성은 인정하지만, 법 자체는 유효하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국민들의 상식을 벗어나도 크게 벗어난 결과였다.
절차적 적법성은 관계없이 일단 통과만 되면 합법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민들이 상식적으로알고 있는 법 논리인 "절차적 정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술먹고 운전한 건 인정해도, 음주운전은 아니다"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어도 합격하면 그만이다." "도둑질을 한 건 인정하지만, 도둑질한 물건은 도둑의 소유다"라는 국민들의 비아냥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는 사회적 가치에 위배됐음을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삼권분립 하에서 입법부의 독립성을 지켜줘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는 판결을 부정하거나 부인했어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입법부의 과정과 결과는 입법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명시했어야 한다. 그것도 아닌 "법 유효 결정"은 헌법재판소의 고충의 표현이 아닌 "정치적 판결, 또는 권력형 판결"일 뿐이다.


또,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회의원 다수가 찬성하고 있는(한나라당이 다수이니까) 법이 절차적 문제는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회 표결과정에서의 혼란, 즉 표결방해와 대리투표는 위법여부의 상위개념으로 다수의 찬반이라는 결과를 뒤집을 수 없는 소수적 문제라 할지라도, 일사부재의 원칙은 명백하게 판결해야 마땅하다. 이는 다수와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회의 주재의 근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부인할 수 없는 "권력형 판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법에 "상식"이 실종된 것이다. 국민적 상식은 사라지고, 권력의 눈치보기만 횡횡하고 있다.


정의가 사라진 정치, 상식이 실종된 법....
대한민국이 최악의 위기라는 징후다.
그것도 외부의 요인도 아닌, 국민적 요인도 아닌, 정치와 법으로부터 기인한 요인이다.


이제 다시 '정의'와 '상식'을 찾아가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법 유효"라는 헌재의 문구에 집착하지 말고, 삼권분립에 따라 입법부의 논란은 입법부에서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실질적 내용에 천착해야 한다. 
야당의 주장, 시민사회단체의 요구, 국민의 목소리에 귀길울이고, "정의"에 기초하여 정치해야 한다.


'언론장악' 의도를 버리고, 미디어악법을 철회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불신을 극복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세우는 가장 첫번째 길이다.



2009. 10. 30. frie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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