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에 해당되는 글 3

  1. 2009.05.07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
  2. 2009.04.28 대한민국은 공동의 가치가 없는 사회
  3. 2009.04.27 새로운 공화국은 필요한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아래의 글은 경향신문에서 기획한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의 세번째 편이다.
박명림 교수(연세대. 정치학)가 김상봉(전남대 철학)교수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박교수는 이 글에서 촛불시위에서 터져나온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예를 들며, "참된 민주공화국 건설을 위한 국민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 대안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시사점을 주는 글을 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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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 불변의 정신·원칙·비전

김상봉 선생님, 안녕하셨는지요. 이제 저희들의 대화가 각론으로 넘어가는군요. 오늘은 우리 헌법의 제1조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 헌법은 여러 조항에 대한 문면적(文面的)·법리적 해석에 비하면 역사와 사회, 미래의 관점에서의 정신·가치·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안 되었지요. 헌법 논의, 해석, 적용의 권한 역시 소수 법률 엘리트들에게 독점되어 있었고요. 그 결과 헌법은 국가와 국민, 사회의 역사·정체성·비전·정신·가치와 관련된 근간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촛불 시위의 ‘헌법 1조’ 외침은 주권회복 = 대의철회 의미 담겨

그런데 2008년 촛불집회를 계기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거리에서 시민들이 헌법 제1조를 제창하면서 헌법은 법전 속에서 살아나와 국민과 민중의 조항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반복된 외침은 ‘시민의 헌법 발견’이자 헌법정신과 가치가 추상에서 구체로 비약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6월항쟁 때의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에 비견됩니다. 헌법문제가 이토록 광범하게 거리에서 불려지긴 6월항쟁 이후 처음이지요.

유신헌법 및 5공헌법 철폐투쟁과 달리 촛불시위의 헌법1조 제창이 지니는 의미는 ‘독재헌법’을 향한 ‘개헌투쟁’이 아니라 국가주권과 국가이익을 둘러싼 정부의 헌법정신 일탈에 맞서 ‘민주헌법’의 ‘해석주체’와 ‘해석권한’을 국민화·시민화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입니다.

이때 국민화·시민화는 헌법제정 주체 자신에 의한 헌법의 정치화·사회화라는 의미를 함께 담지요. 즉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주권회복=주권회수=대의철회의 측면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국민해석, 시민해석의 국면에 진입한 헌법1조를 정확하게 자리매김하고 이해하는 문제는, 단순한 촛불해석이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비전, 진로와 관련해 무척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헌법1조의 연원, 내용, 의미를 차례로 말씀드리며 선생님의 철학적·인문적 해석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건국헌법의 등장을 근대 이래 한국의 헌법혁명의 산물로 설명해왔습니다. 헌법혁명 개념은 민주혁명, 산업혁명, 국민혁명처럼 근대로의 이행에서 헌법부문의 혁명적 변화를 통한 입헌민주주의의 등장을 지칭하지요.

1919년 임정때 ‘민주·공화’ 첫결합…48년 건국때 최종확정 바뀐적 없어

먼저 국호를 보면 1948년 건국 당시 채택된 ‘대한민국’ 국호의 ‘대한’은 1899년 수립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로 올라갑니다. 이때 조선 ‘왕조’를 뛰어넘는 ‘국가’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고, 대한이 천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대한국국제는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헌의6조 등 초기 근대 공화주의 운동이 지향한 입헌군주제, 군민공치(君民共治)를 배반한 군주국가였습니다. 당시 고종과 엘리트가 입헌군주제와 군민공치를 수용, 공화주의 통치를 시행했으면 한국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념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후 대한제국의 몰락, 한일병합, 3·1운동을 거치며 급속히 성장한 공화주의 의식과 운동은 마침내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지요. ‘대한’과 ‘민국’, 당시의 최초 결합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민주공화’라는 말이 처음 헌법 제1조로 등장합니다. 90년 전 1919년 4월11일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였습니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흥미롭게도 3·1운동의 해에 대한민국과 민주공화라는 말이 동시에 헌법에 등장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말 이래의 근대국가 건설운동, 특히 당시 아시아 최대의 공화주의 민중운동이었던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최초의 근대적 공화정부였지요.

첫 등장 이래 헌법1조는 바뀐 적이 없습니다. 2차개헌(1925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 3차개헌(1927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국권은 인민에게 있다”, 5차개헌(1944년):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제4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전체에게 있음”. 1919년 9월 1차개헌에서는 제2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게 재함”이 추가되었지요. 촛불 때 부른 현행 헌법1조(1·2항)의 원형은 건국 훨씬 이전에 등장했던 것이지요. 그만큼 대한민국의 정신·원칙·비전의 고갱이가 오롯이 들어 있는 조항입니다. 놀랍게도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정신은 물론 헌법의 구성·편제·순서까지도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유사성은 현행 헌법까지 이어집니다. 미군점령하에서 만들어졌음에도 건국헌법에 미국의 영향이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유신헌법철폐·민주화 운동 등…헌법 가치가 목표실현 기폭제

해방이 되자 신생국가 건설을 위한 헌법제정 노력이 분출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민주공화’ 정신과 가치의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일치였습니다. 저는 당시의 거의 모든 시민·사회 및 기관들의 헌법안(17개)을 입수해 분석하면서 이 일치를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랐습니다. 거의 모든 초안들이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국호는 한국·조선·대한민국이 혼용되었으나 “민주공화국” “민주공화체”라는 규정은 불변이었습니다. 좌파인 민주주의민족전선마저 “조선민주공화국 임시약법”(시안: 1946년 1월)이라 하여 민주와 공화를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다만 국회 제출 직전의 두 초안은 주권 조항을 “한국·국가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발한다”고 규정해 인민주권을 천명했습니다.

그러면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헌법 제1조는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이것을 국가의 근본정신과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이상적 결합, 즉 민주공화주의로 해석합니다. 민주공화국가·민주공화주의야말로 건국 이래 대한민국의 제일 공준이요, 공동선인 것이지요. 한말 개혁운동으로 시작된 초기 공화주의의 솟아오름부터, 1919년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의 등장과 함께 ‘민주+공화’(=민주주의+공화주의)의 결합을 통한 헌법화 단계를 거쳐, 1948년 건국시점에 최종 확정된 대한민국의 정신·가치·비전의 제일 근간인 것입니다. 어떤 헌법변경세력도 수정,변화,삭제할 수 없는 근본원칙이지요.

제1조가 민주공화주의의 정신을 밝혔다면, 제2조는 주권의 국민소재 및 권력의 국민발원을 밝힌 것입니다. 이는 국가권력의 형성과 존립, 정당성의 근원을 국민에게 부여한 조항으로서 국민주권의 원리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인민주권에 반하여 국민주권 원칙을 천명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권력의 소재가 국민에게 있음을 밝히는, 인민주권과 국민주권의 포괄적 혼합이었습니다.

사실 임시정부 헌법부터 대한민국의 헌법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추구한 삼균주의에 기반한 공화주의를 뼈대로 삼고 있습니다. 건국헌법은 “기회균등, 개인능력 발휘 보장, 책임과 의무 완수, 국민생활의 균등 추구를 기본으로 사회정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강조했습니다. 각인의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고 했고요. 당시 “균형있는 국민경제발전” “경제민주주의”는 “우리나라 경제질서의 원칙”으로 불렸습니다.

실제로 경제는 주요 자원의 국유, 무역의 국가통제, 운수·통신·금융·보험·전기·수리(水利)·수도·가스·공공기업의 국영 또는 공영 등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철저한 공공·형평·균등을 추구하도록 규정되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균형을 통해 건국헌법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공화주의원리에 가까운 헌법의 하나였습니다. 압축근대화의 토대를 놓은 1940~50년대 초기 평등주의 변혁, 즉 토지개혁과 교육혁명이 가능했던 것 역시 북한 급진주의와의 경쟁에 더해, 이러한 오랜 공화주의 전통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급속한 탈공공화 심각한 도전…참 ‘공화’ 위한 새로운 분출 필요

이제 헌법1조의 거시적 영향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현실과 헌법의 차원, 둘 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헌법 1조에 관한 한 그동안 규범과 사회, 조문과 현실이 일치되거나 근접하지 못했지요. 어떤 현실은 조응했으나 거의 대부분은 부조응했지요. 그러나 초기 출발조건은 거시적 영향을 미칩니다. 즉 최초의 규범과 제도의 가치는 비록 현실에서는 부족하더라도 목표로서의 의미를 지녀 미래 비전을 제시해주거나 또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촉발한다는 점입니다. 민주화운동이 유신헌법이나 5공헌법 철폐를 둘러싸고 전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제정 이래 헌법1조의 민주공화주의는 현실적으로, 헌법·법률적으로 모두 도전받아 왔습니다. 현실적 차원에서는 헌법파괴를 통한 권위주의 체제의 등장과 연장처럼 헌법1조와 헌법정신을 유린한 것도 없습니다. 헌법파괴세력이 헌법준수, 법치, 준법을 주장한 것이 민주화 이전의 한국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독재정부의 헌법파괴에 대한 헌법복원노력의 의미를 담는 것이었지요. 민주화 이후 국가의 급속한 사사화·탈공공화 역시 민주공화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반공화성의 핵심인 부패는 모든 정부에 걸쳐 있고요. 헌법·법률 차원에서는 국가보안법과 유신헌법이 그것입니다. 이들은 헌법1조의 풍부한 민주적 자장과 넘치는 공화적 수원, 즉 민주공화적 상상력과 체제 디자인을 좁은 반공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위축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점은 다음 편지에서 자세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두 번의 민주공화주의 흐름이 밑으로부터 분출했습니다. 첫째는 한말-식민-해방-건국 시기로 근대 국민국가 건설로 귀결되었고, 두 번째는 민주화운동 시기로 87년 민주화를 거쳐 민주정부의 달성이란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주공화주의, 민주공화국은 헌법 제1조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권위주의 시기에는 무엇보다 민주주의 파괴로 인해 실현불가였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화가 자유화와 탈공공화, 특히 시장·기업의 자유화와 국가의 탈공공화로 귀결되어 참된 공화성과 공공성은 달성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둘을 만나게 해야 할 때입니다. 참된 민주공화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세 번째 시민적·국민적 운동이 터져나와야 할 시기이고, 그것을 위한 한 공준이 민주공화주의와 대한민국 헌법1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운동에의 참여야말로 오늘의 한국 시민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시민덕성이요,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나에게로 귀결되지 않는 공화국 문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편지는 여기서 줄이며 선생님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출처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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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iale 2009.05.07 13:18 address edit & delete reply

    아무리 헌법이라도 자연질서를 바꾸지는 못하지요.. 예를들어 헌법에서 "중력의 존재를 부인" 한다고 써놔도 틀림없는 과학적 사실자체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경제적 질서도 마찬가지지요.. 헌법에서 아무리 공영 또는 국영을 외쳐도, 시장경제의 원리상 민영의 경쟁력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헌법에서 인간다운 삶과 민주주의의 체제를 규정하는 건 옳치만 경제원리마저 심각하게 간섭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법에 의한 인권침해가 아닐까요?

대한민국은 공동의 가치가 없는 사회

경향신문 기획보도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
김상봉(전남대 철학)-박명림(연세대 정치학) 서신대화를 통해 "새로운 공화국"을 논의합니다.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의미가 있을 것 같아 퍼옵니다.


<2편> 박명림교수가 김상봉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대한민국은 공동의 가치가 없는 사회"

김상봉 선생님, 안녕하셨는지요. 이제 여독이 좀 풀리셨나요? 새해의 시작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우리들 개인과 주변을 둘러싼 거의 모든 일들이 하나도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읽으며 한편으로는 한국현실을 고민하는 정치학도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 속한 시민으로서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제 생각엔 오늘의 한국사회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되어있지 않나 싶습니다. 민주화 이후 20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진행되던 변화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급격하여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공론, 공익, 공준, 공공성, 공동가치나 정신이라고 할 어떤 합의나 합의의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공동 가치 없는 공화국’ ‘공준 없는 공동체’, 이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가치와 행동의 탈공공화야말로 오늘의 상황을 근거짓는 핵심인 동시에 한국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의 혼돈과 미래의 불안의 근원 역시 따지고 보면 모두 공준 창출의 실패에서 출발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합의 가능한 공준과 공공성을 찾아 바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여겨집니다. 물론 갈등의 건강성 또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거쳐야겠지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은 그래도 ‘경제발전’ ‘민주화’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나름대로 합의된 가치와 준칙이 존재하여 암묵적인 공준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국가주의에 의한 강제로서의 합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하게 합의된 지향가치로서의 공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넓은 합의는 현실의 부조리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준 사회적 비전을 의미했지요. 진보와 보수, 좌우가 공히 인정하는 공정한 발언으로부터 파생하는 귄위와 영향력을 갖는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 경제인도 존재했고요.

그러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 가치도 인물도 그룹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와 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고 언론과 지식과 종교의 역할붕괴처럼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습니다. 지금 공적 가치 창출과 대화의 중심이어야 할 정치에 공준이 존재하나요? 공공성과 공론의 전달자여야 할 언론에 최소한의 싹이라도 있나요? 공준, 공공성이 존재하질 않자 이를 대체하는 다른 흐름들이 이 사회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중 사사화(私事化), 역(逆)근대화, 근본화, 파당화의 네 가지가 핵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먼저 사사화를 볼까요? 사회의 최소 공공 준거에 대한 합의가 부재하자 이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사적 관점과 이익의 전면화와 극대화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시장과 기업의 논리가 전체 국가와 사회를 장악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시장과 기업의 창의성, 경쟁성, 효율성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경제는 인간들이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한 근본요소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적 기업논리가 인간생활, 국가, 사회의 다른 모든 공적 영역까지 지배해나갈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마저 사익 대변자로 전락하며 공공성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공적 기구들이 공공성을 상실하면서 개인들이 생존과 생활을 위해 직접 시장과 대면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사회화, 형평화, 복지화를 통해 국가·사회의 공공성, 민주성, 휴머니즘을 동시에 제고하였던 역사적 보편경로로부터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지배적 담론과는 정반대로, 사사성이 아닌 공공성의 제고야말로 삶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 공공성의 한 징표인 한국의 현재 공적 사회지출은 30년 전 민주국가들이 도달했던 수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시민성과 공공성의 표상이어야 할 국가와 정부가 ‘사적 시장정부’ ‘유사 민간기업’이 되어있고 대통령은
‘CEO 대통령’으로 불립니다. 아니 정부와 대통령 자신이 그런 방향으로 가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시민친화 또는 민주주의 친화나 민주공화국 친화가 아니라 공공연히 기업친화, 시장친화를 말해오지 않았습니까? 세계의 민주주의 역사에 비추어 본말 전도도 이런 전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저는 당시 유행하던 CEO 대통령 담론을 두고 오토 아펠이나 하버마스의 개념을 빌려 전형적인 ‘수행모순’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언어나 개념이 형성되는 순간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명제나 조건과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사익·시장·경쟁을 대표하는 CEO로서 성공하면 할수록 공익·균형·조정을 표상하는 대통령으로선 실패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으로서 성공하려고 하면할수록 CEO성격을 버려야 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지요. 즉 ‘CEO 대통령’은 어느 하나를 빨리 버리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공동체를 파국으로 이끌어갈 것이라고 봅니다. 국가와 정부에 공익, 공공성이란 양도할 수 없는 최소 존재요건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말씀하셨듯 공화국이란 나라가 공공적 기관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사화의 진행과 함께 두드러진 현상은 바로 역근대화입니다. 우리는 근대성의 표상으로서의 제도적 민주공화국을 수립한 지 두 세대 만에 세계사에 유례가 드물게 근대화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공화화를 포함하는 근대화란 무엇입니까?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 가치, 공적 지향에의 합의를 통한 사적 신분, 출신, 세습, 주인-노예나 귀족-평민 같은 양극 사회로부터의 해방이 아니었나요?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는 재산의 불평등·양극화가 교육·기회·취업·수입·신분의 극심한 불평등으로 연결되고 두렵게도 공공성·공화성의 표상인 공직·대표구성까지 좌우하고 있습니다. 중간과 중심의 강화를 통해 신분과 재산과 기회의 양극성을 넘어 통합을 지향한 것이 근대화요, 공화화요, 민주화였다면 제가 아는 역사지식으로는 요즘 우리 사회처럼 거꾸로 가는 근대화와 공화화는 존재한 적이 없으며 사사화를 통한 세습사회를 공화국이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문제는 이런 양극사회가 통합과 안정 속에 지속된 사례가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부족한 대로 비교적 일찍 시민적 공화주의나 사회적 연대, 공공성, 사회화를 주창한 것은 무슨 평등주의나 급진주의를 추구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인간화를 통해 이 사회의 해체를 막아보자는 소박한 시민윤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양극사회로 진입했고 더욱 절망적인 것인 부모의 경제, 사회적 양극지위와 자녀의 꿈, 교육, 기회, 수입의 양극성이 거의 비례하여 전승되는 근대이전 사회로 역진입하였음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 역동성의 다른 표현은 삶의 높은 불안정성인데 저는 이것이 바로 엄청난 탈공공성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공준의 부재는 또한 문제판단과 갈등의 근본화·근본주의화와 적나화(赤裸化)로 직접 연결되고 있습니다. 공론이나 공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사회갈등들은 대부분 그것의 성취를 둘러싼 절차나 방법, 자원배분에 관한 적정 갈등 또는 최소 갈등에 머무르지만 한국사회의 갈등은 언제나 근본적 이념과 가치를 둘러싼 최대갈등, 또는 감정대립으로 치닫곤 합니다. 사회·정치적 언어 역시 ‘친북좌파’, ‘수구꼴통’, ‘척결’처럼 폭력적이기 이를 데 없지요. 즉 한국사회의 또 다른 특징인 근본화로서 인간 생활의 가장 나중 또는 근본인 개인적 실존 차원의 범주들이 사회적, 정치적 판단과 행동의 기준·준칙으로 부상하였다는 점입니다. 공준이 존재하고 국가의 공공성과 중간 집단의 바른 역할이 있었다면 나타나기 힘든 현상입니다.

늘 근본주의로 돌아가니 가치의 교환을 통한 공존 체계인 정치마저도 이들 근본화의 영향을 받아 좀체 타협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근본화는 예컨대 종교화, 이념화, 지역화를 말합니다. 모두가 근대화, 민주화, 공화화의 진전과 함께 사회갈등의 전면에서 물러나야 했던 요인들이 점점 더 중요한 정치행위와 갈등요인으로 불러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다른 공공적, 민주적, 사회적 의제들은 묻히게 되고 말지요.

끝으로는 파당화를 들고 싶습니다. 이는 특히 사회문제의 수렴을 통한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 언론, 종교, 대학, 조합, 경제·사회단체와 같은 중간기제들에서 더욱 격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와 타자, 적과 동지, 흑과 백, 선과 악, 진보와 보수를 가른 뒤 모두 자기가 속한 쪽의 논리와 이익만을 부르짖을 뿐입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이익과 그것을 정당화해줄 파당적 이익과 이념을 전제로 판단하고, 또 거의 오로지, 그리고 철저하게 그것을 위해 발언하고 있습니다. 모두 자기가 속한 진영을 대변하고 자기진영에게 확인받기 위한 파당적 내지르기는 존재하나 상대 진영과의 대화를 향한 발언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공적 말의 신뢰가 붕괴되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옳은 말도 상대진영의 것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자기안녕과 이익은 상대의 그것을 인정할 때 확보된다는, 즉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공동체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기본 철칙조차 망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관계와 만남은 완전히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외려 한 공동체 내의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상대 진영은 공존이 아니라 제압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따라서 참된 의미의 대화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대화란 서로 다른 생각과 이익 사이의 인정, 존중, 교환이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에게 본래적 의미의 대화는 실종된 지 오래입니다. 사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시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갈라져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갈라놓았고 이것을 무엇으로, 어떤 가치와 이념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요?

공적 관계와 공준의 부재, 사사화, 파당화는 근대적 계약관념조차 소멸하여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급기야 예종적·굴종적 인간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탈공공화의 궁극적 귀결로서의 비인간화이지요. 그리고 저는 이 점, 즉 ‘공적 시민’과 ‘인간적 사회’의 회복이야말로 공화국을 다시 세우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할 이유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최소 생존을 위해 온갖 사적 이해관계에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내어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근대적 주체로서 체결한 계약관계는 사라지고 전근대적 주인-노예관계가 재등장하게 되지요.

예컨대 수많은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정규직과의 경제적 수입의 차이를 넘어 최소한의 삶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파괴된 상태로 내몰려 삶의 순간순간 인간적 차별과 모멸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참아야 하는 굴종은 그들을 목적적 존재가 아닌 지위로 매일매일 내몰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회체제가 일단 최소 공공성과 계약관계라도 유지하여 품위와 격조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안정과 자존을 유지할 수 있는 체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것은 정말 공화국의 한 시민으로서 저의 최소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다시금 옷깃을 여미고 시민적 공공성에 기초한 새로운 공화국을 향한 꿈을 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소 생존과 자존의 제공의무는 국가와 사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공적 역할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또 사회 중간집단들의 공공성 회복은 가능하며 시민주체성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공준 창출과 확대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선생님과 함께 이 물음들을 되새기며 오늘의 편지를 맺습니다. 평안하시길 빕니다.

출처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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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화국은 필요한가?

경향신문이 기획하여 지난 1월 4일부터 게재한 "김상봉(전남대 철학)-박명림(연세대 정치학) 서신대화"를 퍼온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 - 공화국"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는 서신의 내용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시사점을 준다.


[제1편] 김상봉 교수가 박명림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새로운 공화국 논의를 제기하다"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는지요? 새해 인사로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으나 이번에는 정초부터 세상이 너무 뒤숭숭합니다. 저는 지난달 중순쯤에 학회 일로 스페인에 다녀왔는데 떠나기 전에는 일제고사에 반대했던 교사들을 파면·해임한다고 야단이더니, 돌아오니 이제 방송법으로 법석이군요. 그걸 보며 저는, 어쩌면 제 무덤을 파는 일에 저리도 열심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분노보다 연민의 감정이 먼저 듭니다.


이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20~30년 만에 한 번씩 거대한 민중봉기가 일어났음을 상기하고, 1987년 이후 잦아들었던 항쟁의 에너지가 머지않아 폭발적으로 분출하리라고 예견해왔는데, 지금 이 정부가 하는 행태를 보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정권의 위기가 닥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국가기구가 어떻게 국민의 손에 의해 전복될 수밖에 없는지를 가장 눈부시게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그런데 그 엄연한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자들이 지금의 집권세력이니 어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그것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까닭은 지금의 집권세력이 오래 가지 못하더라도 그 뒤가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이 땅의 씨알들은 나랏일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물을 것입니다. 그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낡은 길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 길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나라를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는 데는 영웅적인 용기를 보였으나, 과연 무엇이 바람직한 나라인지 생각하는 일에는 게을렀던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하지만 설계도 없이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아무런 이상 없이 나라를 세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87년 6월항쟁을 통해 마지막으로 독재 권력을 무너뜨렸음에도 불구하고, 허망하게도 20여년 전 우리가 몰아냈던 독재권력의 후예들에게 다시 국가권력을 헌납한 까닭도 우리에게 새로운 나라에 대한 전망이 제대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단순한 비판과 부정이 아니라 나라를 형성하기 위한 이상과 척도를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바람직한 국가에 대해 생각하는 일에 서툰 까닭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고전적 사회주의 이론이 국가를 소멸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알게 모르게 국가에 대한 적합한 인식은 물론 바람직한 국가에 대한 상상을 억압해온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시즘에 따르면 바람직한 국가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퇴행적인 일로 치부되는 까닭에 엄연히 국가의 울타리 속에서 살고 있고 내심으로도 국가의 소멸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짐짓 국가의 파괴와 소멸을 입에 올릴 뿐 바람직한 국가를 어떻게 형성하고 건설할 것인지를 물을 수 없었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고, 아직도 그 관성이 다 청산되지 않은것이 국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 한국의 진보진영에 고전적 사회주의자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다수는 일찌감치 옛 마르크스, 레닌이 꿈꾸었던 혁명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국가소멸론 따위에는 더 이상 아무 관심도 없으므로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을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국가의 상이 하나같이 다른 나라 학자들의 이론을 빌려온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남의 철학을 가지고 제 나라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남의 이론은 남의 역사에 뿌리박고 있는 까닭에 이 땅의 씨알들의 역사적 기억과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는 나’라는 자아의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 자아의식이란 자기에 대한 기억인 동시에 미래의 자기에 대한 욕구와 동경입니다. 그 기억과 동경이 조화롭게 맞물릴 때 비로소 나의 존재는 안정됩니다. 이런 사정은 집단적 주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한 겨레의 역사적 기억과 미래의 이상이 균형을 이룰 때 역사 속에서 안정된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새로운 나라의 이상이 우리들 자신의 역사적 체험으로부터 자라나온 것일 때만 민중은 그것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이상이 대중성을 가질 때 비로소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됩니다. 하지만 남에게서 얻어온 국가의 이상이란 민중의 역사적 기억과는 단절된 것인 까닭에 그 자체로서는 이 땅의 씨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민족이 다른 민족과의 만남 속에서 자기를 형성하지만, 남에게서 배운 것도 자기 속에서 따라 체험하는 한에서만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족의 역사에 뿌리박지 못한 이상은 죽은 이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난날 많은 사람들이 단지 국가폭력만이 아니라 그 국가에 대항하여 싸웠던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 치유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주위에서 국가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공동체에 대해 조건반사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공동체를 불신하는 사람에게 바람직한 공동체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의미를 가질 리 없으니, 이들의 관심은 온전한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가기구 또는 일체의 공동체에 포획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탈주의 자유란 망상일 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폴리스 속에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스스로 형성함으로써 그 주인으로 자유를 누리거나 아니면 국가의 노예로 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즉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고 치유하면서 우리 자신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바람직한 나라의 이상을 이끌어내는 일입니다.

여기서 제가 이웃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는 것이 무슨 단체나 조직이 아니라 온전한 만남의 문제라는 것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참된 나라를 꿈꾸는 것은 국가기구에 종노릇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슨 추상적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오직 너와 내가 온전히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참된 만남 없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우정 없이 행복이 있을 수 없다면 참된 만남이란 가장 중요한 개인적 욕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욕망이 충족되고 자유가 실현되는 만남의 지평이 바로 나라입니다. 국가가 타락하면 우리의 만남이 왜곡되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이 불행해집니다. 그런 까닭에 이상적인 나라는 당위 이전에 자연스러운 욕망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적인 나라 자체는 추상적인 이념인 까닭에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이상국가의 도식이나 전형이 있게 마련입니다. 300년 전이었다면 성인이 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이상국가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30년 전에 참된 나라를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독재국가 아닌 민주적 국가를 생각하는 것을 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사라진 지금 누구도 단순히 민주국가가 우리가 꿈꾸는 참된 나라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같이 만들어나가야 할 나라의 이름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바로 공화국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키케로나 루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이 말하는 민주공화국이며, 동시에 지난 봄 여름 촛불시민들이 요구했던 민주공화국입니다. 요구하는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현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민주국가가 문제라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독재에 대한 항쟁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고 또 불완전하나마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습니다. 촛불시민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외쳤습니다만, 이명박 정권은 두 번의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확고히 권력을 위임받은 정권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공화국입니다. 그것은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구별하자면 민주국가에서 더 나아가 온전한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지난번 촛불항쟁을 통해 명확히 표출된 시대정신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공화국이란 나라가 공공적 기관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불완전한 예외를 제외하면 왕조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의 국가기구는 한 번도 온전히 공공적 기관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소수의 권력집단이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적으로 점유한 수탈과 억압의 도구가 국가기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공공성이란 나라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상실하면 나라는 더 이상 나라일 수 없으며 우리가 그런 나라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나아가 민주주의 역시 공공성의 원리가 없다면 내용 없는 형식으로 껍데기만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극히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이명박 정부의 폭정에서 똑똑히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즉 지금까지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도 이제는 공화국에 대해 말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하지만 공화국은 무엇이며 공공성은 또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 나라 역사의 어떤 지점에서 공화국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이상을 찾는 것은 누구보다 철학자의 일이지만, 그 이상이 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 속에 뿌리내려야 하는 까닭에 이제 저는 한국정치사를 실증적으로 연구해 오신 선생님께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나라에 공화국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공화국을 꿈꾸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현재의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서 참된 공화국으로 통하는 길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성가시지만 피할 수도 없는 물음으로 선생님을 초대하면서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세상이 비록 혼돈뿐이더라도 선생님께서는 평안하시길 빕니다.

출처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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