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에 해당되는 글 2

  1. 2009.05.07 진보세력 집권때, 국정 프로그램 있나?
  2. 2009.05.07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진보세력 집권때, 국정 프로그램 있나?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을 제기한 손석춘(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진보정치세력에게 실사구시에 기반한 "책임질 비전과 정책"을 제기하고 나섰다.
곱씹어 볼만한 의미있는 글이어서, 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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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뜻을 살리려면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다만 조급할 일은 아니다. 새로운 정당이 성공하려면 먼저 정치세력화의 기반이 튼실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으로 나누어져있는 진보정당은 물론,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의 일부 세력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시민사회단체들의 몫도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치세력화의 기반을 튼튼하게 꾸리고 새로운 정당을 아래로부터 내올 수 있을까. 그 과정에 촛불을 든 모든 사람들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 물론, 무조건 모든 사람이 나서자는 이야기는 공허할 수 있다. 진보적 정치대안을 만들어가는 길, 곧 진보의 진보적 재구성을 이루는 길에 원칙이 필요한 까닭이다.


진보 재구성의 제1원칙 실사구시

무엇보다 먼저 실사구시의 원칙이 절실하다. 실사구시란 말 그대로 사실에 기초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다.
고전을 읽다보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당선언』(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의 독일어판 서문(1890)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에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사건과 변화로 인해, 특히 승리보다도 패배로 인해 투사들은 자신들의 만병통치약(universal panacea)이 지금까지 부적절했음을 깨닫고 노동자 해방의 진정한 조건을 철저히 이해하기 위해 더 한층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엥겔스가 그렇게 주장한 근거다. 엥겔스는 “1874년 인터내셔널이 해체될 당시의 노동계급은 그것이 설립된 1864년의 그들과는 전혀 달랐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 10년의 변화도 엥겔스는 소홀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이론을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부르대지도 않았다. 언제나 “노동자해방의 진정한 조건을 철저히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물며 그로부터 두 세기가 바뀌었다. 그 사이에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이 있었다. 세계사의 전개과정은 자본주의 사회가 부닥친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소련-동구의 몰락과 중국의 전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고난’은 우리 모두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다. 그 사실에 기초할 때, 우리는 경직된 사상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진리를 탐구해야 할 필요성을 더 절감할 수 있다.

책임지고 실현할 비전과 정책 제시할 때

막연한 이상주의와 구호 수준의 담론을 넘어서서 실제로 신자유주의로부터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조건과 정책을 철저히 파고들어야 옳다. 진보세력이 집권했을 때 현재의 정치경제 체제와 전혀 다르게 국가를 책임질 수 있는 구체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실사구시가 필요한 이유는 관념적 이상주의의 모호한 비전이 분열을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중의 삶, 민중의 고통이 엄중한 데도 경직된 사상에 기초해서 주자학적 논쟁에 치중하면 반목하거나 갈라질 수밖에 없다.
책임지고 실현가능한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 대다수인 민중의 이해관계에 기초해 실제 ‘경제 살리기’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실사구시의 원칙이 중요한 까닭이다.



출처 :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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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4.29재보선과 촛불 1주년.
그리고, 앞으로도 산더미처럼 남아있는 정치일정. 10월 재보선, 2010년 지방선거.....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세력,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손석춘(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의 글이 의미심장해 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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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을 맞아서도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하며 여전히 폭력적 탄압을 서슴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 정권을 대체할 정치적 대안이 없다는 오만 때문이다.
기실 2008년 ‘촛불항쟁’ 내내 어떤 정당도 촛불을 든 민주시민들의 대안으로 믿음을 주지 못했다. 국민 대다수인 민중에게 더 심각한 문제는 촛불항쟁이 벌어졌던 2008년 5․6․7․8월과 촛불항쟁 첫 돌을 맞는 2009년 5월은 객관적 세계정세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촛불 1년 맞아 국민 대다수의 고통은 더 커져

2008년 9월 본격화한 미국의 금융 위기는 세계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위기로 치닫고 있다. 그 결과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중소기업 도산과 자영업 몰락, 실업률 급증이 현실화하고 있다. 민중의 생존권이 더 위협받는 국면이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할 때, 민중의 고통은 무장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환할 조짐이 보이지 않기에 더 그렇다.

그렇다. 촛불항쟁과 그 후 1년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경제와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은 익어가는 데 주체적 조건은 준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주고 있다.
따라서 진보의 과제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답은 자명하다. 정치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일이다. 비단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중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통일운동이든 정치적 구심점이 없을 때, 각 부문의 운동 발전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 대안 만들지 못하면 박근혜 정권 가능성

이명박과 한나라당 정권에 맞설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앞으로 더 많은 민중의 고통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정권이 들어설 수 있다. 박근혜의 ‘줄푸세’정책에서 드러나듯이 그와 이명박의 경제정책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바로 그렇기에 진보세력의 대안은 더 절실하다. 물론, 정치지형에서 진보세력이 외면 받는 데는 외적 요인이 크다. 반세기 넘도록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이데올로기가 그 주범이다. 비단 언론만이 아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 교육을 통해 “경쟁만이 살 길”이라는 자본독재의 이데올로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내면 깊은 곳까지 침투하고 있다. 외적 요인은 냉전에서 ‘승리’한 초강대국 미국의 현실적 힘을 정신적, 물리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외적 요인이 설령 지배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요인만 강조한다면, 주체적 대응에 게으를 수밖에 없다. 가령 “언론 탓”만 한다면, 임기 내내 언론을 지청구 삼아 좌충우돌로 5년을 보낸 노무현 정권과 우리가 다를 게 없다. 노 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도 늘 ‘진보’를 자처해 진보세력 전반에 대한 국민 불신을 불러왔다. 그래서다. 외적 요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내적 요인을 더 중시해야 옳다.

새로운 정당 이전에 정치세력화의 기반 성찰할 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과 민주당 일부로 흩어져있는 진보적 정치세력이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과 더불어 정치적 대안을 만들려면 재구성이 관건이다. 현재 네 정당 가운데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 집권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정치적 구심점이 절박하다고 해서 지금 당장 새로운 정당을 누군가 주도하거나 ‘헤쳐 모여’식으로 만들 수도 없다. 촛불항쟁에 나섰던 모든 세력이 지금 할 일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내기 이전에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기반을 튼튼하게 마련하는 일이다. 바로 그것이 진보의 진보적 재구성이다.

여기서 ‘진보적 재구성’이라 할 때 그 대상인 동시에 주체는 진보정당의 정치인이나 당원들만이 아니다.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학생운동, 시민운동, 통일운동만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국민이다.



출처 :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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