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에 해당되는 글 2

  1. 2009.10.19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북한은 웃었다!
  2. 2009.09.07 노엄 촘스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하다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북한은 웃었다!

논란이 빗발치던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날이 지나고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노벨위원회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오바마의 비전은 세계평화에 대해 희망을 심어줬다"며 수상의도를 언급했지만, "간디도 못받은 평화상을 대통령에 취임한지 9개월 남짓 밖에 안된 정치 초년생인 오바마가 받았다는 것 자체가 노벨상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미국내에서는 "의회의 승인을 얻지 않으면 헌법위반"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고, 선정직전 노벨위원회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었다는 언론보도도 뒤따르고 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50번의 대회에서 승리하고 500명의 타자를 삼진 아웃시키겠다고 말하는 야구 투수에게 상을 준 것과 같다"고 비유한 것은 오바마 노벨평화상에 대한 지적의 백미다.


물론, 노벨상 자체가 지나치게 정치적이거나 강대국의 논리에 좌우된다는 비난을 받아온 건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바마의 경우처럼 전세계의 찬반이슈가 된 건 처음이다.


오바마 스스로도 밝혔듯이, 이번 노벨평화상은 업적에 의한 결과라기 보다는 "기대와 격려"의 차원인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노벨평화상이 오히려 오바마에겐 큰 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에 힘 실어준 노벨평화상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 근거인 "기대와 격려" 중 가장 큰 건 뭐니뭐니 해도 "핵무기 없는 세상"이다.
물론, 미국의 대북정책, 대이란정책이 가장 직접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국은 대북라인의 진용이 갖춰지지 않은 조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요구에 순응하며 북한무시 내지는 대북 강경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클린턴 장관-캠벨 차관보-보즈워스 대표-성김 특사"로 라인이 갖춰지면서 북미 직접대화를 위한 뉴욕채널을 본격적으로 가동하였고, 빌 클린턴의 방북과 북한의 전향적 태도로 북미직접대화는 초읽기가 되고 있다.
이제는 리근(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방미, 보즈워스(북한정책 특별대표) 방북이 구체화되고 있고, 노벨평화상은 그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10월 9일 노벨위원회 발표가 있자마자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란, 북한 핵프로그램 폐기 문제 등이) 앞으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할 몇 가지 대표적인 예들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이 이 문제들을 풀어가는 추진력이 되기를 바란다"고 공식화한 바 있다.
크롤리 차관보도 브리핑을 통해 "노벨위원회는 평화상 수여 이유로 비확산 노력을 특히 강조했다."고 발표했다.


즉, 노벨평화상은 미국의 핵무기 비확산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주문하고 있고, 미국은 기 추진하고 있는 북미 직접대화를 통한 대북정책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며, 북한은 요구했던 북미 직접대화를 확인받고 있는 것이다.


또, 노벨평화상으로 비확산 노력을 약속하게 된 오바마는 2010년 5월로 예정되어 있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를 앞두고 북미 직접대화를 통해 일정한 성과를 올려놔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벨평화상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북미 직접대화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바마-김정일의 만남설"도 조심스레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2009. 10. 19. frie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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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엄 촘스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하다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가 "대한민국과 오바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시사in의 노력으로 성사된 인터뷰가 그걸 가능케 했다.

노엄 촘스키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노엄 촘스키가 말하는 "오바마와 미국"....

꽤, 흥미로운 주제다.

노엄 촘스키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한국민이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렸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후퇴할 가능성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투쟁의 과정이며,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선행조건이라고 강조한다.

버락 오바마에 대해서 그는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를 "수많은 권력자와 자본가가 앞세운 얼굴마담" 정도로 비유하고 있다.
당연히 그는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은 실패할 것을 확신하고 있고, 아프간 전쟁은 오바마 정부의 끔찍한 범죄라며 경고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민중임을 분명히 했다. 국민이 직접 나설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으며, 한국은 민주주의 알맹이를 채우기 위해 더 많은 국민들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MB의 신독재를 겪고 있는 한국민에게 그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노엄 촘스키는 전하고 싶은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시시in에서 퍼온 내용임을 밝힌다.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내용이다.... 촘스키 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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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in 김영미 편집위원


노엄 촘스키 교수(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언어학과)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학자이자 진보적 정치 활동가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이다. 그는 주로 미국의 외교정책과 인권 문제를 비판해왔다.

이런 노엄 촘스키 교수에 대한 인터뷰는 실로 쉽지 않았다. 80세의 노령인 데다 최근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인망식 인맥 동원과 기다림 끝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8월11일 보스턴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다.

컴퓨터도 없고 자필로 쓴 종이들과 책으로 뒤덮인 책상에 앉아서 필자를 맞이한 그는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오시느라 수고 많았다.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한국 국방부가 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한국에서 당신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

누군가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또한 그런 조처에 반대해 내 책을 읽기 위한 모임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한쪽에서는 금지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다른 쪽에서는 일부러 찾아 읽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투쟁의 과정이다. 미국도 1960년대 이후에야 언론의 자유가 제대로 보호받기 시작했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선행조건이다. 그러나 독점자본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인물을 내세우려고 선거를 매수하는 일이 있는 한 그런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형식적으로 민주주의의 형태를 갖췄을 뿐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로 자처하는 나라 중 상당수는 사실 ‘무늬만 민주주의’다. 그러나 권력은 결국 국민의 손에 있다. 과거 한국에서처럼 독재 정권은 국민의 힘에 의해서만 전복된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동안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현실에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있다.



사실은 흔한 일이다. 미국만 해도 그렇다. 예컨데 미국의 노예제도는 그 끔찍한 남북전쟁을 치르고 나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계속 남아 있었던 것이다. 종전 뒤 20년이 지나서도 남부에서는 여전히 흑인을 억압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흑인은 여전히 노예였으며 농장에서 계속 목화를 따고 사슬에 묶여 광산으로 보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그랬다. 물론 지금 미국에서 그런 일은 볼 수 없지만 정의가 실현되기까지는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광복이 되어 근대국가로 탄생한 지 겨우 60년밖에 안 되지 않았나. 미국보다 민주주의가 훨씬 급속하게 실현되고 있는 거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후퇴할 가능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전 세계를 대표하는 민주국가다.

글쎄. 미국의 경우, 아직도 독점자본이 국가를 소유하고 운영한다. 미국의 선거 시스템에서 수백만 달러 규모의 자금이 없다면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 선거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구입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돈을 지불하는 것은 권력자들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권력자들에게 위험한 제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빈민 등 대다수 국민이 투표권으로 독점적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마음을 놓는 순간 권력자들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어떤 정부인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6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발생한 일을 보면, 오바마에 대한 여러 이미지가 상상이나 착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선거는 치약 광고와 비슷하다. 아름다운 소녀가 치약과 만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내용의 광고가 있는데, 이 광고를 시청하다보면 믿게 된다. 오바마에게 거는 우리의 기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는 혹시 형식적으로 내세워진 일종의 광고 모델 아니었을까. 광고에 등장하는 연예인 같은 모습으로 민주주의를 선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그의 뒤에는 이익을 바라는 수많은 자본가와 권력자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바마 정부는 현재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의료 시스템의 위기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보건의료 시스템이 개혁되지 않는다면 미국 경제는 파산하고 말 것이다. 현재 5000만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 시스템을 바로세우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미국의 의료비는 다른 나라들보다 두 배나 더 비싸다. 그러나 의료 혜택은 비참한 수준이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 의료 시스템이 민간 자본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정말 비능률적이다. 민간의료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의료 시스템의 중심부에 있는 민간 기관들의 목적이 이윤 창출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우 의료비는 엄청나게 높은 수준으로 책정될 수밖에 없다. 행정·감독·관리비로 수백억 달러가 낭비되고 정작 병자들에게는 보험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또한 약품 가격은 다른 국가보다 매우 비싼 편이다. 국민의 85%는 정부가 민간 제약회사와 협상해서 약값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며칠 전 뉴욕 타임스에, 오바마 대통령이 제약회사와 어떤 종류의 거래를 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그 거래에서 오바마는 민간 제약사가 약값을 멋대로 결정하는 데 걸림돌이 될 어떠한 법적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오바마 정부가 의료보험 개혁에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인가.

미국에서는 보험회사도, 월 스트리트의 투자자들도 의료보험 개혁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당시 대형 금융기관에서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았다. 금융자본은 공화당 후보였던 매케인보다 오바마를 선호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월 스트리트가 의료보험 개혁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라크나 아프간 전쟁에, 부시나 오바마 후원자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 전쟁의 목표는 꽤 명확했다. 이라크를 정복한 뒤 말 잘 듣는 괴뢰 정부를 설립해서, 미국 기업들이 거대 규모의 석유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 지역에 전략 거점을 통제할 수 있는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런 특권을 얻었다. 특히 2007년 11월 당시 부시 대통령은 군대를 이라크에 영원히 주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의 군수업체와 기업이 이라크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이 목표를 위해 부시 전 대통령은 군사기지 주둔을 위한 협약에 서명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 협약을 아프간에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2001년 10월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그 목표는 아주 명확했다. 탈레반 정권의 전복이 아니었다.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엎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2001년 10월 당시 미국의 목적은 9·11 테러 혐의자들을 인계받는 것이었다. 탈레반은 증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부시 정부는 그것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을 넘겨받기 위해 아프간 전쟁을 도발했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다른 금전적 이익을 막대한 규모로 챙겼다. 이것은 심각한 범죄이다. 오바마 정부 역시 아프가니스탄이 전략상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 후원자들의 이익을 위해 다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니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오바마 정부의 끔찍한 범죄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보는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만큼의 비용이 필요할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대부분의 분석가는 미국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성공할지도 모른다. 미군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우리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성공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우리가 추궁해야 하는 것은 ‘너희들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혹시 미국의 실수냐고? 그런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확실하게 못 박을 것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강대국들이 행동하는 방식이다. 강대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장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다. 일본에 침략당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국민을 설득한다. 테러 집단이 미국을 위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르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그 테러리스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테러리즘은 미국 권력자들이 애용하는 도구다. 미국 권력자들은 사실 테러리스트들이 하는 짓 그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자기들의 가족이나 친구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테러라는 사건을 적절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이익을 취한다. 9·11 사태 이후 테러가 더 증가하는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 당시, 정보기관과 개별 분석가들은 테러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정확하게 현실화되었다. 부시 집권 당시, 어떤 단체는 지하드 조직을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설득해서 테러 행위에 종지부를 찍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미국 권력자들은 반대로 행동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그 다음 이라크를 침략했다. 그리고 테러는 증가했다. 미국 분석가들은 이를 ‘이라크 효과’라고 명명했다. 이라크 침공 이후 테러는 7배나 늘었다. 아마 현재 미국인들은 물론 미래의 후손들까지 이 테러와의 전쟁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소수 권력자들의 사익 때문에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는 국민이 아니라 권력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쉽다. 누가 한국을 소유하고 있는가. 한국 역시 평등주의자들의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경제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이 소수는 정부 정책과 언론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이런 소수를 위한 존재일 뿐인지도 모른다. 미국 민주주의는 2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이에 비해 훨씬 짧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잠시 퇴행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과정이다. 현실에서 잘못된 일을 경험하면 할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지지 않던가. 한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뤄냈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를 상기해보라. 미국이나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할 때 정말 드문 경우이다.

당신은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로서 어떻게 하면 정부와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소통이 어렵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원한다면 편지를 보낼 수 있겠지. 그러나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 테이블로 불러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올까. 정말로 소통하는 방법은 조직을 구성하여 그들에게 항의하는 것이다. 당신들의 의사와 다른 정책을 수행하면,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민의 정당한 행동이다. 그래야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이미 많은 희생을 겪었다. 앞으로도 그럴까.

그럴 것이다. 앞으로도 많이 희생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알맹이를 채워나가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당시에도 한국인들이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의 알맹이를 채운 바 있다. 이런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 정부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러나 일단 민주주의를 쟁취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착각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든 아이스크림처럼 너무도 허망하게 없어져버릴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쇠퇴도 중요한 과정이다. 민주주의는 아주 어렵고 비싼 노력 끝에 약간 맛볼 수 있는 어려운 쟁취의 과정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주체는 민중이다. 정부에게 민주주의를 맡기지 말라. 국민이 직접 그 중심으로 나설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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