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 해당되는 글 45

  1. 2009.04.06 아빠의 출산후기 2 -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16시간
  2. 2009.04.06 아빠의 출산후기1 - 입원 전날의 심정
  3. 2009.04.06 예비엄마, 지진을 감지하다
  4. 2009.04.06 본격적인 출산준비를 해야한다
  5. 2009.04.06 엄마의 아픔을 한번에 날려버린 "뱃속아기의 힘"
  6. 2009.04.06 아기와 함께하는 첫 해, 2007년의 해가 떠오르다
  7. 2009.04.06 뱃속아기랑 함께 한 크리스마스
  8. 2009.04.06 입체 초음파 사진의 우리 아기
  9. 2009.04.06 황금돼지띠, 의사선생도 예민하네??
  10. 2009.04.06 '빼빼로데이'에 확인한 천생연분
  11. 2009.04.06 고추를 치켜들고 있는 뱃속아기
  12. 2009.04.06 뱃속아기 7개월을 맞아 아내에게 꽃다발을
  13. 2009.04.06 우리 아기가 "아들"이래요.
  14. 2009.04.06 태몽인가? 돼지꿈인가?
  15. 2009.04.06 뱃속 아기와 중국의 정취를 느끼다

아빠의 출산후기 2 -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16시간

2007년 2월 6일(화요일) - 38주 + 6일


- 오전 6시 경 -

아내
와 나는 어젯밤부터 무척 긴장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39주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 모모를 만나는 감격의 시간이 다가온다는 가슴 벅찬 설렘과 말로만 들어왔던 출산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두렵다’며 긴장하는 아내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모두가 다 거뜬하게 했잖아, 진교는 강하니까 괜찮아”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긴 했지만, 나도 속으로는 쿵쾅대는 심장을 가누기 힘들었다.
아내
는 “그래, 모모랑 약속했어. 힘 두 번 주면 세상에 나오기로 ...”라고 자기 위안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D-day가 왔다. 우리는 오전 6시부터 일어나서 부산을 떨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주차해놓은 곳에 가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히터를 있는 대로 다 틀어 놨다. 시동이 잘 안 걸려서도 안 되고, 아내가 추워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서 아내가 깨끗하게 몸을 씻는 동안 삼겹살을 구웠다. (내 생애 처음으로 새벽에 일어나서 삼겹살을 구웠다.)
그리고, 우린 ‘힘주기 거사’를 위해 든든한 아침식사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아내의 긴장은 더 고조되었다. 집에서만 해도 디카를 챙겨서 ‘병원 정문을 배경으로도 사진을 찍고, 분만실에 들어가면 꼭 같이 들어와서 사진을 찍으라는 등’ 자신 있게 이야기 하더니, 병원 앞에 다다르자 농담도 하지 않고 경직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명언을 건넸다.
“임신은 엄마가 하고, 출산은 아빠가 하면 좋겠다. 그게 평등한 거 아닌가?”

- 오전 9시 경 -

8시에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입원수속을 한 후, 아내는 이것저것 검사를(뭔 검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꽤 걸렸다.) 하고, 관장을 한 후 본격적으로 분만 준비에 들어갔다.
아마도 유도분만 약을 먹고, 자궁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건, 우리처럼 유도분만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입원한 산모가 3명이 더 있었다. 원장선생님은 ‘누가 제일 먼저 출산을 할까’하며 은근히 경쟁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런데, 병원 칠판을 보니 다른 산모들은 모두 V-bac인데, 우리 아내만 초산모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산모들은 의약대에 링겔을 걸쳐놓고 있었다. 나중에 안 거지만, 링겔은 촉진제였다. 촉진제는 산모의 자궁을 여는 역할을 하는 듯 했고, 산모들은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병원의 전경은 다소는 코믹했다. 배가 산처럼 나온 산모 네 명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경쟁하듯 천천히 운동을 하고, 수시로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아내는 촉진제 링겔을 맞지 않아서 인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씩하게 운동을 했다. 심지어는 간호사에게 ‘복도 밖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도 되냐?’고 묻고, 나와 함께 계단에서 운동을 하기도 했다. 간호사들도 ‘제일 씩씩하다’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

- 오후 1시 경 -

이제 병원은 전쟁터가 되었다. 산모들의 비명소리로 병원은 숨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 첫째 아기를 제왕절개로 낳은 산모들이 둘째 아기를 자연분만으로 낳기 위해 고통을 힘겹게 참는 것이 옆에서도 느껴졌다. 아내는 아직 힘들어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산모들의 고통과 비명을 함께 느끼는 듯 진지해졌다.
운동을 하며 기다리는 중간 중간, 원장 선생님은 산모를 불러서 ‘내진’을 하곤 했다.
아내
는 ‘내진’을 상당히 무서워했다. 몹시 심하게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서 원장선생님이 오는 소리만 들어도 아내는 두려워했다.
‘내진’을 마치고, 원장선생님은 “이제 겨우 2㎝ 정도 열렸네요”하며 알려 주었다.

휴우 ~ 한 10㎝는 열려야 한다고 하는데, 이제 겨우 20%가 진행되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걸려야 할까? 그동안 아내는 얼마나 힘들까? 서서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내가 한심하고 무능력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조금 있다가 원장선생님은 양수를 터뜨렸다. 아내의 진행속도가 제일 빠르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라는 맘이 들었다. 지금은 아내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짧은 시간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조금 더 있으니, 아내 얼굴에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아내는 당혹스러워했고, 나도 두려웠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가 하고.....
그런데, 원장선생님은 “얼굴만 나는 게 다행이지, 다른 곳은 괜찮으니까... ”하며 정말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다. 그리고, “항생제가 받지 않는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 오후 4시 5분 경 -

‘내진’을 한 후, 원장선생님은 “잘 진행이 되는 줄 알았는데, 상당히 더디네요. 이러다가 꼴찌 하겠어요.” 라고 이야기하며, 간호사에게 촉진제를 투여할 것을 주문했다.
이제 아내도 다른 산모들과 마찬가지로 링겔을 달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촉진제를 투여하자마자 아내는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비명을 지르기도 했고, 쪼그리고 앉아서 아픔을 참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더욱 더 고통스러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진행이 잘 진척되지는 않았다.
아내
는 마침내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진통제를 놔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아내에게 진통제가 잘 맞지 않는 거 같았다. 아내는 진통제를 맞은 지 채 20분도 안돼서 구토를 해버렸다. 원장선생님에게 이야기하니, “진통제가 받지 않는 거 같다”고 한다.

- 오후 9시 40분 경 -

아내의 고통이 극에 달해 가는 것 같다. 자궁이 열리는 것이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이란 걸 처음 알았다. 아내는 7시 30분 경 또 한번 진통제를 투여했다. 또 구토를 할 지 모르지만, 너무도 고통스러워해서 어쩔 수 없었다. 예상대로 아내는 또 구토를 했다. 구토의 양도 꽤 됐다. 그리고, 아내는 간호사들에게 이야기해서, 대기병실에 누웠다. 그 이후로 아내는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원장 선생님과 간호사들이 “운동을 해야 한다고, 참을 수 있으면 일어나 보라고” 해도 아내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며 거부하고, 힘들어 했다.
그런데도 진전은 별로 없었다. 오후 8시 50분이 다 되어서야 겨우 3㎝ 정도 자궁이 열렸다고 한다.
아내
는 이때부터 나에게 애원을 하기도 했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냥 수술 하자”고 나에게 떼를 쓰기도 했다.
나는 “조금만 더 참자. 이제 거의 다 열렸잖아. 원장선생님께 물어보니, 50% 이상 진행된 거라고 하더라”며 애써 아내를 달랬다. 하지만, 아내가 힘들어 하는 만큼 내 맘속도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말, 아내 말대로 임신이든 출산이든 둘 중 하나는 남편이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미 같이 고통을 시작했던 다른 산모들은 하나 둘 출산을 했다. 전쟁터 같던 병실에서 희망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금방까지도 함께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던 산모가 약간은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지만, 걸어서 병실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신비롭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갓난아기들이 싸개에 쌓인 모습을 드러냈다.
옆의 산모들이 출산을 하고, 혼자 남게 되자 아내는 더욱 힘들어 했다.
아내
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시어머니나 시누이 등 가족들 모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잘 못 결정한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아내에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서 힘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 9시 40분이 다 되어서야 자궁이 4㎝ 정도 열렸다고 한다. 원장선생님은 “이러다가 날 밤 샐 것 같다”고 일러주고 갔다.
큰일 났다. 아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이제 나도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밤새 볼 자신이 없어진다.
빨리 자궁이 열렸으면....... 아내의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 오후 10시 40분 -

내진을 마친 원장선생님은 “이제 한 5~6㎝ 열린 거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벌써 촉진제 링겔도 두 개 째다. 아내는 무통주사를 놔 달라고 요구하지만 원장선생님은 “안 아픈게 어딨어, 무통주사 놔도 아파!”하며 간단하게 무시하고 돌아갔다.
“이제 50% 진전된 건가요?”라고 묻는 나에게도 “아니오. 지금껏 50%가 걸렸던 시간에 비해 이젠 급속도로 진전될 겁니다. 이미 70% 이상 진행된 거지요.”라고 답해주고, 그래프까지 그려가며 설명하였다.
사실, 난 아내에게 약간은 심통 나 있었다.
“누워만 있지말고, 일어나서 왔다갔다 걷기 운동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애기가 빨리 내려온다고 하는데, 아내는 한번 눕더니 그 후로는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아! 이러면, 고통스런 시간만 길어질 텐데......”
물론 난 이런 생각을 겉으로는 한마디도 못했다.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일어나란 말을 하냔 말이다. 명색이 아빠가 될 놈인 나는 아무 것도 못하고, 시간만 죽이고 있는데...........

- 오후 11시 20분 경 -

분만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은 수술도구들을 챙겨서 분만실로 들어간다.
원장선생님은 “7㎝ 가량 열렸습니다. 이제 자연적으로 열리는 건 다 열렸다고 보면 됩니다. 이제 부터는 산모가 힘을 주어서 아기를 내려오게 해야지요.”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주임 간호사는 아내와 나에게 “머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힘을 주셔야 하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세요.”를 반복하였다. 나에게도 진교 옆에 서서 함께 힘을 주라고 한다.
어디에 힘을 줘야 할 지 모르는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얼굴에 힘을 주었다.
의외로 아내는 여유도 있었고, 침착했다. 두 번 길게 힘을 주며 큰 숨을 쉬었다. 간호사들도 힘주기를 잘한다고 칭찬하곤 했다. 아내는 간혹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때론 나에게 V자를 보여주며 ‘모모가 세상밖으로 나오기’를 도와주었다.

- 6일 오전 0시 38분 -

간호사가 나에게 손을 씻고 오라고 하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우리 모모를 만날 시간이 됐다는 걸 느꼈다.
가슴이 또 다시 쿵쾅쿵쾅 뛰었다.
생각보다 아내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다. 우리 진교의 훌륭한 모습에 감동했다.
내가 들어가자, 원장선생님은 “이제 거의 다 됐습니다.” 하며, 이상한 기계를 보여주었다. “이 걸로 약간 잡아 빼야 겠습니다.”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원장선생님은 행동에 돌입했다. 그 순간, 핏덩이에 쌓인 갓난쟁이가 나왔다.
원장선생님은 갓난쟁이 모모의 엉덩이 위 부분을 때렸다. 그 순간 세상에 처음 태어난 모모는 우렁차게 울었다. 마치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말하듯이...... 엄마, 아빠에게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듯이.....
원장선생님은 핏덩이 갓난쟁이를 아내의 가슴 위에 올려주었다.
그 순간 아내는 마치 준비되었다는 듯이 “모모야~ 엄마! 엄마!”하며 아기를 얼래 주었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항상 준비되어 있는 여신이다.
근데, 모모의 머리가 이상했다. 마치 화성인을 보듯이 꼬깔콘처럼 길쭉했다. 나는 원장선생님을 쳐다보며, “머리가 왜 이러냐?”고 묻기도 했다. 원장선생님은 웃으며 “골반에 머리가 껴서 그런 거고, 곧 아물 거라고”한다.
나는 간호사에게 수건을 받아서 모모를 닦아 주었다. 나중에 동영상을 보니, 모모를 닦는 내 표정은 지나치리만치 진지했다.

원장선생님은 그 와중에 탯줄을 잡고 내가 자를 부분을 확보해놓았다. 그리곤 탯줄을 자르라고 나에게 표시했다. 나는 가위를 넘겨받고, 떨리는 맘으로 ‘아빠로서의 첫 의식’을 행했다. 생각보다 탯줄은 잘 잘라지지 않았다. 세 번을 가위질을 하고 탯줄이 잘렸다.
분만실에 있던 원장선생님과 간호사들은 모두 축하의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바로 모모를 옆에 준비해놓은 욕조로 옮겨 씻겨 주었다. 물론,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빠인 내가 직접 씻겨 주었다. 온갖 찌꺼기들과 피를 닦아주니, 잘생긴 모모
의 얼굴이 깨끗해져 갔다.
이 모든 모습을 간호사 한 명이 동영상으로 찍어주었다.

2007년 2월 6일 0시 38분, 마침내 나도 아빠가 되었다.

깨끗이 단정한 모모를 받아 안고, 나는 병실로 와서 모모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보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모모는 울지도 않고 아빠를 알아본다는 듯이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있다가 진이 빠진 듯한 모습으로 아내도 들어왔다.
우리 세 식구는 마치 대화라도 나누듯이 이것저것 서로 말을 건네고, 웃곤 했다.
아내
와 나 사이에 잘 생긴 아들이 생겼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바로 나다. 이놈 이거 나랑 똑같이 생겼다. 참 희한하네.......

진교야, 오늘 너의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기특하고, 대견하고, 훌륭해!
세상에는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많은 신들이 있지, 하지만 오늘만큼은 새생명을 탄생시킨 진교라는 여신이 가장 위대하고 사랑스럽다.

진교야, 사랑해~~


모모야, 엄마 뱃속에서 엄마를 그렇게도 괴롭히던 네가 마침내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왔구나.
참, 희한하다. 모모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앞으로 엄마, 아빠의 삶에 가장 중요한 기쁨이 되겠지.
모모야,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하고 소중한, 모모야!

※ 근데, 둘째도 나야 하나? 16시간 동안 아무 것도 못한 채 (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바라만 보는 것도 인간이 할 일이 아니던데........ 휴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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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출산후기1 - 입원 전날의 심정

2007년 2월 4일(일요일) - 38주 + 4일


오늘은 입춘! 명리학에 의하면, 오늘부터 ‘황금 복돼지 해’가 시작된다고 한다.
크게 맘에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 모모도 황금 복돼지 해의 아기’라고 생각하니, 기분은 참 좋다!!
‘황금 복돼지’가 상술이든 아니면 미신이든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모모가 재복을 타고 난다고 하니, 그 좋은 복을 받았다’고 하는 기쁨을 갖게 하는 것. 그것 자체가 좋은 것이고, 우리 아내가 기뻐하니 더욱 기쁜 일일 뿐이다.

여하튼, 우리 모모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춘을 하루 지나서 세상에 나올 듯 하다.
내일 아침 8시면, 아내가 출산을 위해 입원을 한다. 아직 예정일이 꽉 차지는 않았지만, 자그마한 몸의 산모에 비해 아기는 나날이 커 나가니 안전한 분만을 위해 ‘유도분만’을 할 것을 원장선생님이 권하셨고, 아내와 나는 두 말 하지 않고 동의했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건 아내가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이니까.....

곧 출산을 할 예정이어서 인지, 아내도 평소보다 더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그제 새벽에는 진통을 하는 듯 힘들어하며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덕분에 나도 잠을 설쳤다.)
혹시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메모지와 시계를 옆에 두고 진통 시간과 간격을 수시로 재보기도 했다. 약 1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게 진통인지, 가진통인지 몰라서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다. (사실은 첫 출산이라, 이게 진통인지 뭔지도 잘 모르니 두려움은 더 컸다.)

새벽 4시 40분 경, 화장실에 갔다온 아내는 “이슬을 봤다”고 말했다. ‘이슬’은 출산의 조짐이라고 한다. 어떤 산모는 이슬을 본 후 얼마 안되서 진통을 겪고 아기를 출산하기도 한다고 하니......
그래서인지, 아내와 나는 더 긴장이 되곤했다.
어제 새벽에도 아내는 꽤나 힘들어했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부지런히 걷기도 하고, 마지막 출산 준비를 위해 승용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굉장히 피곤해했고, 배는 상당히 뭉쳐져 빵빵하고 단단해져 있었다. 아내와 나는 “혹시나 혹시나....” 불안해 하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하루 종일 ‘경건한’ 출산일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준비를 하는 하루를 보냈다. 사실 마지막 준비란 건 별 건 없다. 출산용품도 다 준비했고, 병원에 갈 때 가지고 가야할 물품들도 미리 다 싸놨고, 심지어는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갈 때 가져가야할 물품들도 미리 다 싸놨다.
아내와 내가 오늘 하루 마지막으로 준비한 것은 ‘힘을 내기 위해’ 몸보신을 하는 것이었다.
아침은 미리 준비한 굴밥과 굴전, 생굴 등 굴요리, 점심은 삼겹살, 저녁은 돼지찌개,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먹을 삼겹살을 준비했다.
그리고, 우리는 차분히 내일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내는 약간은 마음이 허전한가 보다. “이제 우리 아기랑 한 몸으로 있는 마지막 밤일지도 몰라”하면서 약간은 우울해 하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울적해진 아내를 짓궂게 핀잔을 주었지만, 나도 약간은 긴장이 되고 설레이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내일부터 시작될 큰 일에, 우리 아내가 많이 힘들지 않아야 할텐데....”, “내가 아주 듬직하고 확실하게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잘 해내야 할텐데....”

사실은 이런 약간은 불안하고 설레는 맘은 며칠 전부터 시작됐었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짬을 내 당구를 칠때도, 간단하게 술 한잔 할 때도, “이게 이제는 당분간의 마지막 당구, 마지막 술 이겠구나” 하는 새삼스런 생각에 약간은 마음이 서정적으로 되기도 했고, 적지 않았던 시간동안 배가 산만하게 불러가며 고생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에 뜬금없이 “진교야,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에 처음 나오는 우리 예쁜 아기를 만나기 위해 마지막 밤을 보내려고 한다.
나도 드디어 아빠가 되는 것이다.
모든 아빠들이 다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은 약속을 했겠지만, 나도 아주 크게 나 자신과 세상에 약속해본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큰 노력을 기울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게 우리 아들을 키울 테야! 그리고, 그동안의 부족함까지 다 합쳐서 우리 아내를 사랑해줘야지!”

“사랑한다. 우리 아내 진교여!
사랑한다. 우리 아기 모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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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엄마, 지진을 감지하다

2007년 1월 20일(금요일) - 36주 + 3일


그날 그시간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그릇을 씻고 있어서 다른 일이 발생해도 사실 잘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주 약하게 ‘두두두두두.......’하는 마치 북치는 듯한 소리가 빠르게 반복적으로 들렸다.
그 때, 안방에 누워서 TV를 보던 아내가 얼굴이 빨개진 채 크게 놀란 듯 뛰쳐나왔다.
“오빠 ~ 못 느꼈어?? 집이 흔들렸어!!”
나는 다소는 어처구니 없는 말에 “두두두두두두...... 하는 소리만 들렸는데??”하고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내는 굉장히 심각하게 계속 말을 이었다.
“지진인거 같아? 아님 집이 이상이 있는 거 아냐? 분명이 내 몸이 흔들릴 정도였고, 노트북이 흔들거렸다니까!!”
평생 지진의 진동이라고는 느껴본 일이 없던 나는 “말도 안돼. 일본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큰 진동의 지진이 발생하겠어? 게다가 집이 흔들릴 정도였다면 동네사람들이 다 밖으로 나와서 말많은 아줌마들이 난리가 나있지, 주변이 이렇게 조용하겠어?”
강한 부정의 내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불안해서 안되겠는지, ‘밖으로 피신을 가야하는 건 아니냐는 둥, 불안해서 잠을 못자겠다는 둥’ 수선을 떨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같은 진동은 없었고 동네 주변도 지나치게 조용하니, 아내도 다소는 진정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아내는 바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인천 기상청’에 접속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인천 기상청은 계속 다운만 될 뿐 접속이 되지 않았다.
아내
는 접속이 폭주해서 다운되는 거라며, 분명히 지진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에게 114에 연락해서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인천 기상청’에 연락해보라고 했다.
나는 “인터넷 접속이 폭주해서 다운된 거라면, 전화도 안될 거”라고 미뤘다.
그 때, 아내는 ‘중앙 기상청’에 접속하더니, 크게 소리 질렀다.
‘중앙 기상청’에는 <강원도 강릉시 서쪽 20㎞ 부근에 리히터 규모 4.8의 지진 발생! 수도권까지 여파>라는 속보가 떠올랐다.

우리는 즉시 강릉에 계신 장인어른께 전화를 드렸다. 장인어른은 채 묻기도 전에 지진이 발생했다고 흥분해서 말씀하셨다. TV 위에 올려 놓은 인형들이 다 쓰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이후가 되어서야 TV 방송에서도 속보들이 뜨기 시작했고, 인터넷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난 정확한 곳은 강원도 평창 진부이고, 강원도 지역은 집 벽이 갈라지는 곳이 생겼을 정도였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은 무론 전국에서 3 ~ 4 초 가량이 진동이 감지됐다’고 한다.

이제 모모가 태어날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확인됐다. 큰일이다!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해야 할 모모의 세상에 그동안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지진이라는 악재까지 겹치게 됐다니......
이제부터는 지진 대피도 충분히 훈련을 해놔야 겠다. 모모가 태어나면 교육도 시켜야 겠고.....

그래도 다행이다! 모모에겐 예민한 엄마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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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출산준비를 해야한다

2007년 1월 16일(화요일) - 35주 + 6일


모모를 만난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다.
‘점 하나 처럼 보였던 애기집’부터 시작해서 어느덧 초음파로 모모와 만나온 날이 열한 번째다.
‘점 하나’(06.6.13) ⇒ ‘애기집 속의 원 모양’(06.6.27) ⇒ ‘애기 집 속의 사람 형태’(06.7.10) ⇒ ‘머리.몸통.다리가 확연한 사람의 모습’(06.8.7) ⇒ ‘등뼈까지 분명하게 보이며, 힘찬 심작박동을 선보인 모습’(06.9.4) ⇒ ‘심장.위 등 장기가 확연한 모습’(06.10.9) ⇒ ‘고추와 불알을 드러내며 아들임을 알려준 모습’(06.11.7) ⇒ ‘어느 부분인지 잘 몰라 엄마랑 아빠랑 한참 살피게 했던 모습’(06.12.5) ⇒ ‘눈.코.입을 또렷하게 보여준 입체 모습’(06.12.19) ⇒ ‘타원형의 위의 모습’(07.1.2) 등 점점 더 엄마와 아빠를 닮아 가는 모습으로 발전상이 초음파 사진으로 그대로 간직되고 있다.

‘오늘은 또 어떤 모습으로 엄마와 아빠를 기쁘게 해줄까?’하는 궁금함으로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원장님은 마치 더 이상 보여줄 께 없다는 듯 당연스레 초음파 검사를 했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만 말씀하셨다.

그러더니, 예정일보다 앞서서 2월 첫째 주면 출산을 할 것 같다고 깜짝놀랄 말을 던졌다. 그리고, 2주 후인 30일부터는 내진(자연분만을 위해 모모를 머리를 바로잡아 주는 것)을 해야겠고, 이제부터는 일주일에 한번씩 보잔다.

아내와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말이었다.
벌써 1월 16일인데, 2월 초면 이제 보름도 채 안남은 것이다. 이제 보름도 안되어서 모모를 직접 만나게 된다.

한편으로 설레일 정도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웬지 모를 불안함도 있다.
우리가 엄마, 아빠로서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는 건지........?

하지만 모모야, 엄마와 아빠는 하루빨리 모모를 보고 싶단다. 그리고 모모와 함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 새로운 가족생활을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단다.

건강하게 예쁘게 빨랑 엄마와 아빠에게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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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아픔을 한번에 날려버린 "뱃속아기의 힘"

- 모모의 세상 첫 물품 -

2007년 1월 12일(금요일) - 35주 + 2일


어려운 조건과 환경에서도 그토록 열심히 했건만,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본인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꼭 되고 싶어 했건만, 아내는 ‘공립 초등학교 임용고시’에서 떨어져 버렸다.
그것도 커트라인에서 0.4점 모지라고 250명을 선출하는 것에서 258등으로 탈락되었다.
며칠 전부터 긴장하고 초조해하던 진교가 끝내 긴 한숨을 내쉬더니 꾹 참아왔던 울음을 소리없이 터뜨리고 말았다.
아마도, 본인의 실패를 용납하기 싫었고, 친정 아버지와 나 그리고 모모에게 미안해서,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부끄러워서 일 꺼다.
나 또한 꽤나 괴롭다. 아내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아내가 힘들어 하는 것 때문에 참 힘들다.

며칠 전부터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 두려워서 ‘떨어져도 괜찮다, 혹시 떨어지더라도 그까짓 거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라’고 그토록 강조했지만, 아내에겐 다 필요없는 말이었던 것 같다.

혹시나 해서 늦게 출근했던 내게 진교는 친정과 언니에게 대신 전화 해달라고 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좋지 않은 소식을 대신 전했다.
꽤나 늦은 시간에 출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오늘은 같이 있어 달라고 슬프게 이야기 했다. 나는 출근길의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다시 왔다. 출근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어떻게 하면, 아픔과 슬픔에 빠진 아내를 조금이나마 기쁘게 해주고, 우울함을 털어버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동안 미뤄두었던 ‘출산용품’을 사러가자고 제안했다.

아내
는 처음에는 내키지 않는 듯 하더니, 나의 설득에 못이기는 척 함께 나섰다.
우리는 미리 작성해 두었던 출산용품 리스트를 다시 꼼꼼하게 살피고, 할인매장과 이랜드 등 유아용품점 몇 군데를 골라 품질과 가격, 사은품 등을 비교해 보고, 미리 가서 살펴봐야 할 곳을 골랐다.

집에서는 조금 멀지만 부천의 유아용품점인 ‘꼬마야’를 가보기로 했고, 그 주변에 있는 대형 이랜드 매장에 가서 유야용품 전문 매장들도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가 살펴보고 사야할 유아용품 가지 수는 31가지나 됐고, 가격도 50여 만 원이나 됐다.
가장 부피가 큰 물건은 욕조이고, 가장 작은 부피의 물건은 면봉이었다. 개별로 가장 비싼 물품은 기느영 포대기이고, 가장 싼 물품은 짱구 베개였다.

다소 날씨는 추웠다. 하지만, 눈치를 보니 추운 날씨와 달리 아내의 마음은 많이 풀어진 것 같았다.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먼저 찾은 대형 이랜드 매장에서 우리는 꽤나 실망했다. 전문 매장도 별로 없었고, 상품 가지 수도 별로 없었으며, 가격도 턱없이 비싸기만 했다.
우리는 다음 매장인 ‘꼬마야’로 향했고, 그곳에서 엄청 다양한 품목 가지 수와 각 품목별 다양한 회사의 제품들로 깜짝 놀랐다. 일일이 고르는데도 꽤나 시간이 걸릴 듯 했다.
다행히도 주인 부부는 친절하게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고, 우리가 가져간 리스트 순서대로 꼼꼼하게 가지가지 상품들을 설명해주고 또 추천도 해주었다. 고마운 건, 가게 주인이라고 비싼 것만 추천한 게 아니라 때로는 ‘이런 건 비싼 게 필요없다는 둥, 이런 건 안 사도 된다는 둥, 이런 건 나중에 사야 한다는 둥.....’ 정말 도움되게 말을 해주었다.
우리는 그동안 아내가 언니와 친구들에게 들었던 정보들, 그리고 가게 주인이 알려주는 지혜들, 순간적인 디자인과 색깔 등에 대한 판단 등을 총 동원해서 모모를 예쁘고 건강하게 해줄 물품들을 하나하나 골랐다.

다 고르니, 어느덧 시간은 꽤나 흘렀고 산 물품들은 들고가기 조차 힘들 정도로 쌓였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 표정에는 아픔이나 슬픔이 깨끗이 가신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역시, 모모의 힘은 대단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엄마의 아픔을 한번에 날려버리는 걸 보니....
앞으로 태어나면, 아마도 엄마와 아빠의 행복을 매일매일 가득 채워 줄 께 분명하다.

모모야, 고맙다! 엄마에게 다시 행복한 미소를 찾아줘서....
그리고 ‘꼬마야’ 주인들도 고맙습니다.

※ 그 이후로 진교는 시험에 떨어진 사람답지 않게 행복해 하고 있음.

 

모모의 첫 물품 구매 리스트

 

1. 가재수건 30장 2. 목욕 타올 2장 3. 등받이 욕조 4. 짱구 배개 5. 겉싸개

6. 방수요 2장 7. 기능형 포대기 8. 아기 로션 9. 콤팩트형 파우더 10. 아기 비누

11. 신생아용 손톱 가위 12. 아기옷 세재 13. 섬유 유연제 14. 모유 패드

15. 신생아용 모자 16. 신생아용 손.발싸개 15. 콧물 흡입기 16. 아기용 면봉

17. 물티슈 18. 아기 옷 빨래 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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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함께하는 첫 해, 2007년의 해가 떠오르다

2007년 1월 1일(월요일) - 33주 + 5일


2006년이 가고 황금복돼지의 해라는 2007년 정유년이 시작됐다.
아내가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보낸 29년의 해, 그리고 내가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보낸 38년의 해... 그 모든 해 중에서 진교와 나에게 2007년은 가장 소중한 해가 될 것이다.
아내
와 나 사이에 또 하나의 사랑스런 가족인 모모가 함께 하는 첫 해이기 때문이다.

이제 배가 산처럼 나와 있어 움직임 자체가 힘든 아내의 상황 때문에 우리는 30일 오후부터 시작된 연휴에도 불구하고 어디도 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다.
아내
와 나는 새해를 맞아 집안 청소를 하고, 오랜 만에 함께 푸욱 쉬었다.
그리고, 새해 재야의 종소리와 일출은 TV를 통해서 들고 보았다.

새해를 시작하며, 나는 아내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새해맞이 ‘부모 서약서’를 쓰자고 한 것이다.
우리는 모모에게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를 서로 의논하고, 선언하자는 것인데........ 물론, 미리 생각해 놓은 뭐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친구같이 편안한 부모’ ‘동생처럼 재미있는 부모’ ‘동료처럼 가까운 부모’ ‘형처럼 듬직한 부모’ ‘애인처럼 따뜻한 부모’ ‘스승처럼 엄한 부모’ 등등을 생각해 본 정도.....

근데,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제기한 내게 진교는 한치의 동요도 없이 ‘싫어’하고 거절했다.
‘가식적이라나......’ ‘그렇고 그런 정답같은 걸 고민하기 싫다나......’
그런데, 나는 아내의 그런 모습이 나쁘거나 못됐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 누구보다도 모모에게 정성을 다하는 ‘친구같고, 동생같고, 동료같고, 형같고, 애인같고, 스승같은 부모’가 우리 진교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의 맘 속에는 이미 모모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새해를 맞아 모모에게 해주어야 할 온갖 계획들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을테니까.

아내
의 배가 커진 만큼 모모도 엄청나게 자랐다. 몸무게도 무려 2.23㎏이나 되었다.
이제 아내는 모모가 움질일 때마다 고통을 호소했고, 눈으로 보기에도 배에서 울룩불룩하는 게 커다랗게 확인될 정도다.
아마 모모도 2007년 세상에 태어날 자기 포부를 그리고 있나보다.

모모야, 엄마랑 아빠랑 2007년부터 멋진 세상을 만들어 보자꾸나. 자 ~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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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아기랑 함께 한 크리스마스

2006년 12월 25일(월요일) - 32주 + 5일


결혼하고 세 번 째 맞는 크리스마스다.
이미 아내와 나는 며칠 전부터 뱃속의 모모와 함께 대화하며 거실 탁자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예쁘게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서로 논의하곤 했었다. 물론, 명쾌한 안을 만들어 놓진 못했지만...
하지만, 그저께 시험을 치르느라고 고생한 진교를 위해서 크리스마스는 멋지게 보낼 생각이었다. 말이 2차 시험이지 면접에 영어면접, 시범강의를 고생이 많았으니까.

근데, 모모가 꽤나 컸는지 이제 진교가 멀리 돌아다니는 것에 큰 부담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임신한 후 처음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멋진 저녁 외식을 하며’ 크리스마스 밤을 보내기로 했다.
영화는 ‘김아중의 미녀는 괴로워’를 보기로 했고,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서 커플 코스요리를 먹기로 했다.
사실, 극장을 가는 것은 은근히 불안한 일이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고 싶어하는 진교의 상태에서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는 있는지, 깜깜하고 공기도 안 좋고 소리도 큰 극장이 무리가 되지는 않는지 상당히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모의 움직임에 주시하며, 영화를 조심스럽게(?) 봤다.
영화는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재밌었다. 모모도 재미있었는지 영화의 하이라이트 때마다 꽤나 심하게 태동을 하곤 했다.

무사히(?) 영화를 마친 우리는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그리고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5층 건물의 ‘공화춘’으로 갔다. ‘공화춘’은 1892년 임오군란시 청나라 군인들과 함께 들어온 군역상인에 의해 처음 화교들이 유입되면서 생긴 청관거리에 ‘산동회관’이름으로 처음 청요리집을 만들고, 이후 1912년 공화춘이란 이름으로 개칭한 무려 95년을 이어온 중국음식점이다.
‘공화춘’은 공화국의 밝아오는 아침이란 뜻이란다.
공화춘은 그 명성대로 예약하지 않고는 쉽게 갈 수 없었다. 공화춘 앞에는 순서대로 번호표를 나눠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고, 전화기를 통해 손님 한 팀이 나갈 때마다 한 팀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번호표를 받아놓고 차이나타운 거리를 구경하고 번호순서를 확인하면서 기다렸다 겨우 들어갔다.
공화춘은 생각보다는 싼 가격이었다. 물론, 맛은 명성에 비례했다. 하지만, 인테리어는 명성 치고는 좀.......
정말 오래간만에 영화도 보고, 차이나타운까지 가서 요리도 먹고........ 모모도 진교도 좋은 시간을 보낸 듯 흐믓해 하는 것 같지만, 적지않이 힘들긴 했나보다.

아내
는 집에 오자마자 발을 주물러 달라고 하며 드러누웠고, 모모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힘들어 했다.
휴우 ~ 모모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우리 가족은 벌써부터 외식이 힘들어 졌다.

앞으로는 더 힘들어 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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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 초음파 사진의 우리 아기

2006년 12월 19일(화요일) - 31주 + 6일


모모와 초음파로 만나는 것이 처음도 아니고 이제는 익숙해 질만도 하지만, 오늘은 아내와 내가 유독 더 기대가 가득했다. 오늘은 입체 초음파 사진으로 모모를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사진들을 보면, 아기의 모습이 마치 직접 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기에, 아내와 나는 꽤 흥분해 있었다.

부평 성모병원은 입체 초음파 사진은 부원장이 찍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부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진찰을 받았다.그런데, 이게 웬일??
입체 초음파 화면으로 나타난 모모는 우리의 기대를 단 번에 무너뜨렸다.
부원장이 말해주는 대로, 보여주는대로 눈, 코, 입, 몸통, 팔, 다리, 각종 장기들, 뼈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보았지만, 일반 초음파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얼굴 윤곽이 드러나고 눈 코 입 등이 마치 강아지를 보듯이 귀엽게 드러나긴 했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뚜렷한 모모의 모습을 확인하기에는 턱없이 불충분했다.
아내
와 내가 약간은 실망한 듯한 것을 느꼈는지, 말없이 묵뚝뚝한 부원장은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탯줄이 가리고 있어서 잘 안보이네요.”
우리는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모모의 입체 사진만을 계속 보고 불확실한 모습을 토론을 통해 확인하곤 했다.

첫 번째 사진은 코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모모의 코는 엄마랑 아빠 코와 너무도 똑같이 생긴 것 같다. 약간은 뭉뚱하고 짧으면서도 낮지만은 않은 코.
그리고 두 번째 사진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쌍거풀이 있는 지 없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똥그랗게 뜬 눈은 꽤 커 보였다.
아내
도 신기해하고, 좋아라 했다.

모모야, 엄마랑 아빠랑 자꾸 힘들게 추측하게 만들지 말고, 빨랑 예쁘고 건겅하게 자라서 만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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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띠, 의사선생도 예민하네??

2006년 12월 5일(화요일) - 29주 + 6일


황금돼지띠로 인해 세상이 술렁술렁 한다. 내년이 정해년(丁亥年)이기 때문이다.

황금돼지띠는 사주명리학에 근거한 이야기다. 중국에서는 붉은 색을 재물을 상징하고 복을 가져다주는 최고의 색으로 여기는데, 정(丁)은 음양으로는 음이고 오행으로는 화(火)에 해당하며 화는 붉은색이니 붉은 돼지로 보는 것이다. 더구나, 음력 정해년은 60년 만에 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내년을 붉은 돼지 해 가운데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황금돼지 해’라고 한다. 정해년은 고전 명리학의 학설 중 오행의 토(土)에 해당되며 노란색, 즉 황금색이기도 하다.
또한, 예부터 우리나라는 돼지를 매우 길한 것으로 여겼고, 돼지꿈을 꾸면 재물이 넘치고 먹을 복이 있다고 해석해왔다. 이런 관념이 오랫동안 내려왔는데, 그냥 돼지 때도 아니고 “황금돼지 띠”이니 그 길함이 오죽하랴.
그래서, 올해 애를 낳으려고 무척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나보다.

물론, 황금돼지 띠는 단순이 미신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 아기가 재물이 있고, 복을 받아서 편안하게 잘 산다’고 한다면 미신인들 기쁘지 않겠는가.

2007년은 황금돼지의 해이다. 그럼, 황금돼지띠는 음력 1월 1일에 태어나야 하는 건가?
아니다. 사주명리학은 새해의 시작을 입춘으로 본단다. 그래서 2월 4일 이후에 태어난 아기를 황금돼지띠의 아가라고 한다.
우리 모모가 출산할 예정일이 2월 14일이니까, 음력 설인 2월 18일보다는 4일 모자라지만 입춘인 2월 4일보다는 늦으니까 확실한 황금 복돼지인 것이다. (푸하하하 ~)

근데, 걱정도 있다. 출산률이 떨어져 걱정인 나라에서 출산률이 높아지는 것은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긴 하지만, 한 시기에 많이 태어나는 것은 모모에게 교육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결혼할 때나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그런 건 모모가 예쁘고 건강하게 태어나고, 아내가 힘들지 않고 편안하고 건강한 것에 비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오늘 병원에 갔더니 나보다 더 황금돼지에 예민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진교 진찰을 맡고 있는 성모산부인과 원장님이다.
원장님이 진찰을 마치더니 갑자기 진료 차트와 달력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걱정이 된 내가 “왜요? 무슨 안 좋은 게 있나요?”하고 물었더니, 원장 왈 “아기가 자꾸 커나가서 좀 일찍 출산하는 게 좋은데, 설 이후에 나오는 건 안되겠네요.”하는 것이다.
내가 “왜요? 설 전에 나오면 돼지?” 원장은 “돼지띠가 안되니까.....”라고 말을 흐렸다.
나는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씁니다.”라고 했더니, 원장은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라며 끝까지 신경을 썼다.
아무래도, 주변에서 돼지띠로 낳게 해달라고 요구가 많았었나보다.

모모야, 아빠는 모모가 돼지띠여도, 개띠여도 상관 없단다. 건강하게 예쁘게만 자라고, 엄마 힘들지 않게 잘 세상에 나오거라~~~

이미 모모 너는 엄마와 아빠에게 황금이고, 복돼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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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데이'에 확인한 천생연분

2006년 11월 10일(금요일) - 26주 + 2일


11월 11일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빼빼로’를 선물로 주고받는 ‘빼빼로데이’다.
물론, ‘빼빼로데이’는 지극히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날이다. 하지만, 그 상업적 계산에 따라가지 않고 서로에게 사랑의 징표나 맘을 표시하는 것은 소중하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철없는 소년소녀처럼 값비싸고 비효율적인 선물이 아니더라도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을 잘 챙기는 편이다.

나는 ‘빼빼로데이’에 ‘모모를 뱃속에 안고서 열심히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진교’에 대한 애정을 표하기 위해 퇴근길에 편의점을 찾았다. 편의점에는 ‘빼빼로데이’를 겨냥한 엄청난 선물들이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선물들을 사기 위해 젊은 남녀들이 빽빽이 줄을 섰다.
‘초콜릿 과자인 빼빼로 수십 개를 연결한 선물상자’에 마치 과일바구니를 연상시키는 ‘빼빼로 선물바구니’ 그리고, 인형하고 어울려 있는 빼빼로 등 선물을 화려하기도 했다. 물론 엄청 비싸기도 하구....
나는 그 엄청나게 쌓여있는 엄청난 빼빼로 숲 사이를 뚫고, 평범한 과자 진열칸에서 평범한 700원짜리 빼빼로를 골랐다.
“아몬드 빼빼로가 맛있다”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아몬드 빼빼로’를 하나 골랐고, 하나로는 조금 아쉬워서 깔끔하게 생긴 ‘누드 빼빼로’를 하나 더 골랐다.
빼빼로 선물셋트를 사는 사람들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700원짜리 빼빼로 두 개를 사자니 약간은 쑥스럽기도 했고, 마치 나 혼자 노인네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별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군.....)

집에 들어와서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가방채로 숨겼다. 빼빼로데이 아침에 기분좋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 였다.
근데, 가만히 쉬며 TV를 시청하고 있자니 가방 속에 있는 빼빼로가 은근히 맘에 걸렸다. 가방속에서 찌그러지지는 않을런지.......
그래서, 아내 몰래 작은 방으로 가서 가방 속의 빼빼로를 꺼냈다. ‘어디에 숨길까’ 하다가, 달력 뒤에 숨기려고 살짝 달력을 들췄다.

그런데.......!!! 이럴수가......!!
달력 뒤에는 내가 산 ‘아몬드 빼빼로’와 ‘누드 빼빼로’와 똑같은 두 개의 빼빼로가 감추어져 있었다.
아내
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며, 빼빼로 두 개를 산 것이다.
어쩜 이렇게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을까? 우린 네 개의 빼빼로를 가운데 놓고 한참을 웃었다.

진교는 나랑 똑같은 편의점에서 똑같은 생각으로 ‘아몬드와 누드의 두 개의 빼빼로’를 샀고, 나랑 똑같이 엄청난 빼빼로 셋트를 지나 다소는 부끄런 맘으로 계산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전해주려고 나랑 똑같은 곳에 똑같이 숨켜놓은 것이다.

우리는 작은 ‘빼빼로 사건’을 두고 또 한번 우리의 사랑, 우리의 천생연분을 확인했다.
모모도 엄마와 아빠의 깜짝놀랄 우연이 희한했는지, 오늘따라 마구 움직였다.
모모, 진교, 나....... 우리 셋은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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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치켜들고 있는 뱃속아기


2006년 11월 7일(화요일) - 25주 + 6일


오늘 또 모모를 만나러 갔다.
6월 13일. ‘임신인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설레는 맘으로 병원을 찾아나선 이래, 오늘이 꼭 일곱 번째로 모모를 만나는 날이다.
매번 모모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모모는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충분히 ‘효도’를 하고 있다. 어렵게 공부하고 있는 아내에게 한 달에 한 번 엄청난 희망과 희열을 주고, 아무 것도 모르는 나에게도 신기함과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게다가 매번 만날 때마다 어쩌면 그렇게 놀랍게도 빠르게 자라는지...... 신비하고 새롭기 그지 없다.

오늘은 모모를 만나러 가기 전에 6월 13일 모모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10월 9일까지의 모모의 모습(초음파 사진)을 찬찬히 살펴봤다.
‘점 하나’로 표현해도 괜찮을 듯 했던 ‘애기집’의 모습만 보였던 6월 13일, 아주 쬐그맣게 생명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심장박동 소리까지 들렸던 6월 27일, 팔과 다리를 생생히 보여주며 사람의 형체가 되어가던 7월 10일, 커다란 머리와 듬직한 몸통과 구부린 다리 등을 확연하게 확인시켜준 8월 7일, 발가락까지도 또렷하게 드러난 9월 4일, 다리 사이에 달린 묘한 물체로 성별을 구분하게 해줬던 10월 7일.....

그런데, 오늘은 모모가 아내와 나에게 더욱 큰 선물을 안겨 주었다.
이리 저리 초음파 기계를 움직이며 모모의 모습을 보여주던 의사선생님이 “갑자기 모모의 하체 부분에서 멈추며, ‘모모의 고추’를 분명하게 강조하셨다.
엄마 뱃속이 너무 좁은 지 잔뜩 움츠린 모모의 모습에 못내 아쉬워 하는 우리에게 의사 선생님은 “오늘은 이 녀석의 고추사진을 분명하게 찍은 걸로 만족합시다”하며 다리를 벌리고 남성을 치며 세운 모습을 사진으로 한컷 찍어주었다.

‘딸이 더 좋다’며 나랑 똑같이 우겼던 아내는 맘이 바뀐 것인지, 아들이라는 이야기에 연신 싱글벙글 하였다. 초음파 사진을 보고 또 보곤 하였고, 집에 와서 동영상도 보고 또 보곤 하였다.
여기저기 아는 곳에 전화해서 아들 소식을 알리기도 했고.......

물론, 나도 아버님에게 아들 소식을 기쁜 맘으로 전하긴 했지만..........

모모야 ~ 아들아 ~
엄마 닮아서 예쁘고 멋진 내아들, 모모야 ~

건강하고 밝게 더욱 잘 자라고, 빨랑 나와서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만나자꾸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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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아기 7개월을 맞아 아내에게 꽃다발을

2006년 10월 25일(수요일) - 24주


오늘은 모모가 24주가 되는 날이다.
어느덧 우리 모모가 7개월에 접어드는 것이다. 참 신기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계산을 잘 못했다. 7개월은 25주부터 접어드는 것을...... 여하튼 나중에 잘 못 계산한 것을 알고 아내와 나는 또 한번 크게 웃었다.)

“약국에서 임신시약을 사서 시험해보니, 임신인 것 같다.”고 이야기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 아내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우리 모모가 7개월이 되는 것이다. 그때는 ‘언제 겨울이 지나서 우리 모모를 만나나?’ 했는데, 벌써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짓을 하기로 했다. 우선 꽃다발을 샀다. 국화 등 가을꽃을 가득 담은 풍성한 꽃다발이다.
큰 맘 먹고 꽃다발을 산 순간처럼, 꽃다발을 들고 서울 여의도에서 인천 부평까지 오는 길은 꽤나 쑥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굉장히 뿌듯하기도 했다.

나의 작은 성의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기뻐했다.
꽃꽂이를 한다, 사진을 찍는다, 모모와 대화를 나눈다 등등 정신이 없었다.

쬐끔은 ‘더 잘해주지 못하는 내가 미안할 정도’로......

사실, 꽃을 사서 선물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아내
와 처음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할 때도 아내와 나는 “꽃은 비실용적이야, 먹지도 못하고 결국은 버리게 되거든”하며 서로 공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꽃은 비실용적일지는 몰라도 기쁨이나 감동을 배가시킨다는 것을.

여하튼 모모야, 건강하게 쑥쑥 자라주어서 정말 고맙구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모모 때문에 엄마와 아빠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단다.

모모야, 사랑한다. 앞으로도 계속 쑥쑥 자라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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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기가 "아들"이래요.

2006년 10월 9일(월요일) - 21주 + 5일


오늘은 모모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아내
는 며칠 전부터 오늘을 고대했다. 모모를 보고싶은 맘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표현은 잘 안하지만.......
아내
도, 나도 비록 초음파 사진과 동영상으로 만나는 모모지만, 모모를 만나는 설레임, 모모를 만나는 벅참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유독 모모의 발길질이 심해왔었기에, ‘모모가 얼마나 컸는지, 모모가 또 어떤 모습으로 엄마랑 아빠를 기쁘게 할지’ 기대가 무척 컸다.
또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열심히 ‘음식줄이기’를 해온 아내가 ‘살은 더 찌지 않았는지’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은근한 설레임과 엄청난 기대를 안고 모모를 만났다.
지난 달처럼 아내는 진료실 침대에 누워 볼록 나온 배를 내밀었고, 의사는 초음파 기계를 배에 대고 모모의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서 확인시켜줬다.
나는 진료실에 함께 들어가 의사와 아내와 함께 모모의 모습을 보았다.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모모는 이제 너무 커서 한 화면에 다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의 뱃속이 너무 좁은지 꽤나 웅크리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너무 커서 키를 한번에 잴 수가 없네요.”하면서, ‘머리 꼭지부터 등까지, 그리고 등부터 무릎까지’ 따로따로 키를 쟀다.

“여기가 다리, 여기가 팔, 여기가 위, 여기가 머리, 여기가 몸통, 여기가 얼굴 ......” 의사선생님이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하면서 초음파 사진을 이쪽저쪽으로 옮겼지만, 솔직히 의사선생님의 설명과 눈에 보이는 사진의 모습을 일치시키는 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저게 다린가?...... 다리 같지 않은데....... ” 생각하다보면, 바로 “여기가 팔”하는 말로 넘어가 버리니까....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갑자기 “어? 다리 사이에 뭐가 튀어나와 있네요. 음... 다리 사이에 뭐가 있는 것으로 봐서 아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아내
랑 나는 “띵 ~~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 “그렇지만, 잘 모르겠다고 했으니까......”

병원을 나서며, 아내는 “집에 가서 DVD로 확인해야지!!”하며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모모야~ 너 아들이니?” 음.... 딸이든 아들이든 아빠한테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단다. 예쁘고 건강하고, 튼튼하고 똑똑한 우리 애기!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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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인가? 돼지꿈인가?

2006년 10월 5일(목요일) - 21주 + 1일


모두에게 ‘태몽’이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만나면 ‘태몽’을 묻곤 한다.
아마도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또는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아기가 처음 엄마 뱃속에 자리 잡을 때 즈음이나 태어날 즈음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이 그 사람을 위해서 꾸는 꿈은 누구에게나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소중한 마음을, 새로 세상에 태어나는 아가의 건강과 복을 비는 정성과 합쳐 ‘태몽’이라 부르는 것 일게다.

모모에게는 ‘태몽’으로 추정(?)되는 두 가지의 꿈이 있다.
하나는 장인어른이 꾸신 꿈이다.
어느날 장인어른께서 “아주 큰 감나무에서 먹음직스러운 감을 한 소쿠리 가득 따는 꿈”을 꾸셨단다. 그리고는 진교의 임신소식을 들었단다. 그 ‘태몽’을 듣고 ‘감’이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딸’일 거라고 하는 분도 있었고, ‘씨가 있는 과일인 감’이기 때문에 ‘아들’일 거라고 하는 분도 있었다.

또 하나의 태몽은 어머님께서 꾸셨다.
어머님께서는 “아주 큰 사과나무에서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따는 꿈”을 꾸셨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모모에 대한 태몽’일 거라고 생각하셨다나??
아무래도 두 어르신의 태몽으로 미루어보아, 우리 모모는 모두가 좋아하고 갖고 싶어하는 탐스럽고 예쁘고, 복스러운 아가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그런데, 좀처럼 꿈을 잘 꾸지 않는 (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어제 밤에는 인상에 남는 꿈을 꿨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서, 이 꿈은 웬지 복꿈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위 돼지꿈 말이다.
‘로또 복권을 하나 사야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는 내 꿈을 듣고는 ‘아빠가 꾼 태몽’이라고 단정했다.

꿈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낮에 내가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쪽으로 뒤를 돌아보는데, 집 벽으로 큰 뱀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뱀은 파란빛 같기도 하고, 초록빛 같기도 한 예쁘고 신비스러운 빛깔을 한 아름답고 멋진 뱀이었다. 물론, 크기도 꽤나 컸다. 뱀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뱀은 웬지 좋은 뱀 내지는 훌륭한(?) 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머리부터 천천히 내려오는 그 뱀 앞에 작은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뱀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개구리를 삼켰다. 결코 잔인하거나 악한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집으로 소리쳤다.
“뱀이다 ~”
그러자, 집 안에서 아버지가 나오셨다. 아버님은 또 아주 자연스럽게 뱀을 들고 들어가셨다. 마치 강아지를 안아 들고 가듯 뱀을 가볍게 들고 가셨다.
그리고 난 안심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웬지 기억에 선명하고, 그리고 너무도 아름답고 멋진 뱀의 모습, 개구리를 자연스럽게 삼키는 모습,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뱀을 들고 가시는 모습 등 아무래도 평범한 꿈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
의 말처럼 ‘태몽’이든, 아니면 돼지꿈이든 모모와 아내가 건강하고, 아내가 임용고시에서 철썩같이 합격하고, 우리 가족이 돈이나 건강, 화합 등 그 어떤 것에도 어려움 없이 화목하고 행복해지는 복꿈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것이다.

모모야 ~ 우리 가족의 행복지킴이자, 복덩이인 모모야 ~
엄마랑 아빠는 너를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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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 아기와 중국의 정취를 느끼다

2006년 10월 3일(화요일) - 20주 + 6일


주말과 개천절, 추석연휴를 포함하면 무려 9일의 장기 연휴가 지속되는 날이다. 나도 2일 월요일 출근하고 바로 쉬어서 7일의 꿀맛같은 휴일을 만끽하고 있다.
아내
가 갑자기 중국 ‘월병’을 맛보고 싶다고 해서, 오늘은 아침 일찍 서둘러 ‘차이나타운’을 갔다.
하인천에 자리 잡고 있는 ‘차이나타운’은 인천의 명소다. 화교들이 집결해서 살고 있는데다가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집인 ‘공화춘’을 비롯해서 온갖 중국음식점, 중국 기물들을 모아서 파는 곳이다.
사실, 우리는 인천으로 이사 오자마자 이곳 ‘차이나타운’과 ‘화평동 세수대야 냉면 골목’부터 찾은 바 있다. 그 때도 온갖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며 즐겼었다.

그런데, 오늘은 뱃속의 모모와 함께하는 ‘차이나타운’ 나들이인데다가, 새로운 곳을 구경한다기보다는 먹고픈 것을 먹으러 가는 것이다.
‘차이나타운’은 처음 방문할 때처럼 모든 것이 신기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문화, 새로운 물품들을 보는 재미는 여전히 쏠쏠했다.
우리는 ‘차이나타운’ 거리를 한바퀴 돈 이후, ‘북경점’에 들어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아마 모모도 늘 먹던 짜장면과 탕수육이 오늘은 전혀 다른 특별한 맛임을 함께 느꼈을 것이다. 특히, 파인애플과 레몬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소스에 따뜻하게 튀겨있는 탕수육의 맛은 모모도 무척 좋아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월병’을 사러 중국 상점에 들어갔다.
그런데, 월병 뿐 아니라 온갖가지 신기한 것들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나는 뱀장난감에 쏘옥 빠져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고, 아내는 아이들 옷과 모자 등에 정신을 빼앗긴 듯 했다.
우리는 중국 상점에서 실컷 놀고 나서, 중국 아기 모자와 몽골 아기 모자를 하나씩 샀다. 막내 조카 선물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조카들이 눈에 밟혔다. 그래서, 신기한 모양의 볼펜도 사고, 5가지 다양한 맛의 ‘월병’도 샀다.
오늘 저녁에 큰누나 가족들, 작은누나 가족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조카들에게 선물도 나누어 주고, 월병은 어른들이 맛 볼 생각이다.

우리 모모가 빨리 태어나서 빨리 자라면, 같이 ‘차이나타운’에 와야겠다. 그래서, 예쁘고 귀여운 옷이랑 모모가 좋아할 만한 호랑이 인형, 중국 모자, 뱀 장난감 등을 잔뜩 사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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