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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출산후기 2 -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16시간

2007년 2월 6일(화요일) - 38주 + 6일


- 오전 6시 경 -

아내
와 나는 어젯밤부터 무척 긴장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39주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 모모를 만나는 감격의 시간이 다가온다는 가슴 벅찬 설렘과 말로만 들어왔던 출산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두렵다’며 긴장하는 아내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모두가 다 거뜬하게 했잖아, 진교는 강하니까 괜찮아”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긴 했지만, 나도 속으로는 쿵쾅대는 심장을 가누기 힘들었다.
아내
는 “그래, 모모랑 약속했어. 힘 두 번 주면 세상에 나오기로 ...”라고 자기 위안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D-day가 왔다. 우리는 오전 6시부터 일어나서 부산을 떨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주차해놓은 곳에 가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히터를 있는 대로 다 틀어 놨다. 시동이 잘 안 걸려서도 안 되고, 아내가 추워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서 아내가 깨끗하게 몸을 씻는 동안 삼겹살을 구웠다. (내 생애 처음으로 새벽에 일어나서 삼겹살을 구웠다.)
그리고, 우린 ‘힘주기 거사’를 위해 든든한 아침식사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아내의 긴장은 더 고조되었다. 집에서만 해도 디카를 챙겨서 ‘병원 정문을 배경으로도 사진을 찍고, 분만실에 들어가면 꼭 같이 들어와서 사진을 찍으라는 등’ 자신 있게 이야기 하더니, 병원 앞에 다다르자 농담도 하지 않고 경직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명언을 건넸다.
“임신은 엄마가 하고, 출산은 아빠가 하면 좋겠다. 그게 평등한 거 아닌가?”

- 오전 9시 경 -

8시에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입원수속을 한 후, 아내는 이것저것 검사를(뭔 검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꽤 걸렸다.) 하고, 관장을 한 후 본격적으로 분만 준비에 들어갔다.
아마도 유도분만 약을 먹고, 자궁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건, 우리처럼 유도분만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입원한 산모가 3명이 더 있었다. 원장선생님은 ‘누가 제일 먼저 출산을 할까’하며 은근히 경쟁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런데, 병원 칠판을 보니 다른 산모들은 모두 V-bac인데, 우리 아내만 초산모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산모들은 의약대에 링겔을 걸쳐놓고 있었다. 나중에 안 거지만, 링겔은 촉진제였다. 촉진제는 산모의 자궁을 여는 역할을 하는 듯 했고, 산모들은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병원의 전경은 다소는 코믹했다. 배가 산처럼 나온 산모 네 명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경쟁하듯 천천히 운동을 하고, 수시로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아내는 촉진제 링겔을 맞지 않아서 인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씩하게 운동을 했다. 심지어는 간호사에게 ‘복도 밖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도 되냐?’고 묻고, 나와 함께 계단에서 운동을 하기도 했다. 간호사들도 ‘제일 씩씩하다’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

- 오후 1시 경 -

이제 병원은 전쟁터가 되었다. 산모들의 비명소리로 병원은 숨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 첫째 아기를 제왕절개로 낳은 산모들이 둘째 아기를 자연분만으로 낳기 위해 고통을 힘겹게 참는 것이 옆에서도 느껴졌다. 아내는 아직 힘들어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산모들의 고통과 비명을 함께 느끼는 듯 진지해졌다.
운동을 하며 기다리는 중간 중간, 원장 선생님은 산모를 불러서 ‘내진’을 하곤 했다.
아내
는 ‘내진’을 상당히 무서워했다. 몹시 심하게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서 원장선생님이 오는 소리만 들어도 아내는 두려워했다.
‘내진’을 마치고, 원장선생님은 “이제 겨우 2㎝ 정도 열렸네요”하며 알려 주었다.

휴우 ~ 한 10㎝는 열려야 한다고 하는데, 이제 겨우 20%가 진행되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걸려야 할까? 그동안 아내는 얼마나 힘들까? 서서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내가 한심하고 무능력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조금 있다가 원장선생님은 양수를 터뜨렸다. 아내의 진행속도가 제일 빠르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라는 맘이 들었다. 지금은 아내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짧은 시간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조금 더 있으니, 아내 얼굴에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아내는 당혹스러워했고, 나도 두려웠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가 하고.....
그런데, 원장선생님은 “얼굴만 나는 게 다행이지, 다른 곳은 괜찮으니까... ”하며 정말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다. 그리고, “항생제가 받지 않는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 오후 4시 5분 경 -

‘내진’을 한 후, 원장선생님은 “잘 진행이 되는 줄 알았는데, 상당히 더디네요. 이러다가 꼴찌 하겠어요.” 라고 이야기하며, 간호사에게 촉진제를 투여할 것을 주문했다.
이제 아내도 다른 산모들과 마찬가지로 링겔을 달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촉진제를 투여하자마자 아내는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비명을 지르기도 했고, 쪼그리고 앉아서 아픔을 참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더욱 더 고통스러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진행이 잘 진척되지는 않았다.
아내
는 마침내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진통제를 놔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아내에게 진통제가 잘 맞지 않는 거 같았다. 아내는 진통제를 맞은 지 채 20분도 안돼서 구토를 해버렸다. 원장선생님에게 이야기하니, “진통제가 받지 않는 거 같다”고 한다.

- 오후 9시 40분 경 -

아내의 고통이 극에 달해 가는 것 같다. 자궁이 열리는 것이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이란 걸 처음 알았다. 아내는 7시 30분 경 또 한번 진통제를 투여했다. 또 구토를 할 지 모르지만, 너무도 고통스러워해서 어쩔 수 없었다. 예상대로 아내는 또 구토를 했다. 구토의 양도 꽤 됐다. 그리고, 아내는 간호사들에게 이야기해서, 대기병실에 누웠다. 그 이후로 아내는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원장 선생님과 간호사들이 “운동을 해야 한다고, 참을 수 있으면 일어나 보라고” 해도 아내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며 거부하고, 힘들어 했다.
그런데도 진전은 별로 없었다. 오후 8시 50분이 다 되어서야 겨우 3㎝ 정도 자궁이 열렸다고 한다.
아내
는 이때부터 나에게 애원을 하기도 했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냥 수술 하자”고 나에게 떼를 쓰기도 했다.
나는 “조금만 더 참자. 이제 거의 다 열렸잖아. 원장선생님께 물어보니, 50% 이상 진행된 거라고 하더라”며 애써 아내를 달랬다. 하지만, 아내가 힘들어 하는 만큼 내 맘속도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말, 아내 말대로 임신이든 출산이든 둘 중 하나는 남편이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미 같이 고통을 시작했던 다른 산모들은 하나 둘 출산을 했다. 전쟁터 같던 병실에서 희망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금방까지도 함께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던 산모가 약간은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지만, 걸어서 병실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신비롭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갓난아기들이 싸개에 쌓인 모습을 드러냈다.
옆의 산모들이 출산을 하고, 혼자 남게 되자 아내는 더욱 힘들어 했다.
아내
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시어머니나 시누이 등 가족들 모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잘 못 결정한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아내에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서 힘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 9시 40분이 다 되어서야 자궁이 4㎝ 정도 열렸다고 한다. 원장선생님은 “이러다가 날 밤 샐 것 같다”고 일러주고 갔다.
큰일 났다. 아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이제 나도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밤새 볼 자신이 없어진다.
빨리 자궁이 열렸으면....... 아내의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 오후 10시 40분 -

내진을 마친 원장선생님은 “이제 한 5~6㎝ 열린 거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벌써 촉진제 링겔도 두 개 째다. 아내는 무통주사를 놔 달라고 요구하지만 원장선생님은 “안 아픈게 어딨어, 무통주사 놔도 아파!”하며 간단하게 무시하고 돌아갔다.
“이제 50% 진전된 건가요?”라고 묻는 나에게도 “아니오. 지금껏 50%가 걸렸던 시간에 비해 이젠 급속도로 진전될 겁니다. 이미 70% 이상 진행된 거지요.”라고 답해주고, 그래프까지 그려가며 설명하였다.
사실, 난 아내에게 약간은 심통 나 있었다.
“누워만 있지말고, 일어나서 왔다갔다 걷기 운동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애기가 빨리 내려온다고 하는데, 아내는 한번 눕더니 그 후로는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아! 이러면, 고통스런 시간만 길어질 텐데......”
물론 난 이런 생각을 겉으로는 한마디도 못했다.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일어나란 말을 하냔 말이다. 명색이 아빠가 될 놈인 나는 아무 것도 못하고, 시간만 죽이고 있는데...........

- 오후 11시 20분 경 -

분만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은 수술도구들을 챙겨서 분만실로 들어간다.
원장선생님은 “7㎝ 가량 열렸습니다. 이제 자연적으로 열리는 건 다 열렸다고 보면 됩니다. 이제 부터는 산모가 힘을 주어서 아기를 내려오게 해야지요.”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주임 간호사는 아내와 나에게 “머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힘을 주셔야 하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세요.”를 반복하였다. 나에게도 진교 옆에 서서 함께 힘을 주라고 한다.
어디에 힘을 줘야 할 지 모르는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얼굴에 힘을 주었다.
의외로 아내는 여유도 있었고, 침착했다. 두 번 길게 힘을 주며 큰 숨을 쉬었다. 간호사들도 힘주기를 잘한다고 칭찬하곤 했다. 아내는 간혹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때론 나에게 V자를 보여주며 ‘모모가 세상밖으로 나오기’를 도와주었다.

- 6일 오전 0시 38분 -

간호사가 나에게 손을 씻고 오라고 하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우리 모모를 만날 시간이 됐다는 걸 느꼈다.
가슴이 또 다시 쿵쾅쿵쾅 뛰었다.
생각보다 아내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다. 우리 진교의 훌륭한 모습에 감동했다.
내가 들어가자, 원장선생님은 “이제 거의 다 됐습니다.” 하며, 이상한 기계를 보여주었다. “이 걸로 약간 잡아 빼야 겠습니다.”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원장선생님은 행동에 돌입했다. 그 순간, 핏덩이에 쌓인 갓난쟁이가 나왔다.
원장선생님은 갓난쟁이 모모의 엉덩이 위 부분을 때렸다. 그 순간 세상에 처음 태어난 모모는 우렁차게 울었다. 마치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말하듯이...... 엄마, 아빠에게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듯이.....
원장선생님은 핏덩이 갓난쟁이를 아내의 가슴 위에 올려주었다.
그 순간 아내는 마치 준비되었다는 듯이 “모모야~ 엄마! 엄마!”하며 아기를 얼래 주었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항상 준비되어 있는 여신이다.
근데, 모모의 머리가 이상했다. 마치 화성인을 보듯이 꼬깔콘처럼 길쭉했다. 나는 원장선생님을 쳐다보며, “머리가 왜 이러냐?”고 묻기도 했다. 원장선생님은 웃으며 “골반에 머리가 껴서 그런 거고, 곧 아물 거라고”한다.
나는 간호사에게 수건을 받아서 모모를 닦아 주었다. 나중에 동영상을 보니, 모모를 닦는 내 표정은 지나치리만치 진지했다.

원장선생님은 그 와중에 탯줄을 잡고 내가 자를 부분을 확보해놓았다. 그리곤 탯줄을 자르라고 나에게 표시했다. 나는 가위를 넘겨받고, 떨리는 맘으로 ‘아빠로서의 첫 의식’을 행했다. 생각보다 탯줄은 잘 잘라지지 않았다. 세 번을 가위질을 하고 탯줄이 잘렸다.
분만실에 있던 원장선생님과 간호사들은 모두 축하의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바로 모모를 옆에 준비해놓은 욕조로 옮겨 씻겨 주었다. 물론,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빠인 내가 직접 씻겨 주었다. 온갖 찌꺼기들과 피를 닦아주니, 잘생긴 모모
의 얼굴이 깨끗해져 갔다.
이 모든 모습을 간호사 한 명이 동영상으로 찍어주었다.

2007년 2월 6일 0시 38분, 마침내 나도 아빠가 되었다.

깨끗이 단정한 모모를 받아 안고, 나는 병실로 와서 모모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보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모모는 울지도 않고 아빠를 알아본다는 듯이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있다가 진이 빠진 듯한 모습으로 아내도 들어왔다.
우리 세 식구는 마치 대화라도 나누듯이 이것저것 서로 말을 건네고, 웃곤 했다.
아내
와 나 사이에 잘 생긴 아들이 생겼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바로 나다. 이놈 이거 나랑 똑같이 생겼다. 참 희한하네.......

진교야, 오늘 너의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기특하고, 대견하고, 훌륭해!
세상에는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많은 신들이 있지, 하지만 오늘만큼은 새생명을 탄생시킨 진교라는 여신이 가장 위대하고 사랑스럽다.

진교야, 사랑해~~


모모야, 엄마 뱃속에서 엄마를 그렇게도 괴롭히던 네가 마침내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왔구나.
참, 희한하다. 모모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앞으로 엄마, 아빠의 삶에 가장 중요한 기쁨이 되겠지.
모모야,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하고 소중한, 모모야!

※ 근데, 둘째도 나야 하나? 16시간 동안 아무 것도 못한 채 (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바라만 보는 것도 인간이 할 일이 아니던데........ 휴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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